※{이만섭시인서재}
기억의 발견 - 이만섭
이양덕
2019. 10. 14. 07:26
기억의 발견
이만섭
물컵이 놓였던 자리를 먼지가 알아보게 한다
잠든 나체처럼 기억자리를 지키며
흰 봉투에 담긴 늦은 답장이 안부뿐이듯 유리탁자는
친애하는 기억의 미제(未濟)
사물의 기득권은 유별나서
못에 박힌 벽이 아픔을 떠안은 세월에도
다정을 품어 있음에
계절의 갈색은 초록에서 나온 빛깔
갈색이 짓물러 흙에 묻힌다 해도 풀잎의 시간은 지속되듯
소금처럼 변함없는 것들 드러나지 않아도
슬몃슬몃 진실을 토로한다
숲길에 개미떼 새까맣게 한일자로 눈금을 그어놓았다
어느 생의 보시인가, 처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익숙한 것도 아닌데, 한 몸 맹렬히 거두어들이는 의식은
절딴 난 생이 밀약이나 한 듯 넉넉하다
마침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소유하지 않는 유산처럼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