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여기서부터 - 이만섭

이양덕 2020. 1. 16. 09:01





여기서부터



                     이만섭




돌의 귀와 새의 부리를 가진 아침이 있다.

창 너머 기립한 세한의 나무

잠 깨인 가지마다 직립에 기대어

거울의 감정으로 자세를 비추인다.

머지않아 움틔울 자리가 아직은 정물 속에 기다린다.

눈을 뜬다는 것은 생명이 약동한다는 말

이제까지 나는 흘러왔다고 할까,

골짜기 흐르는 물 경사도에 힘입어 졸졸거리며

어디쯤이 지평일까 하룻길에도 일모도원을 걱정하듯

심사를 가득 채운 검불 한 짐 남김없이 불태워

마침내 열어젖힌 마음의 출구에서

흙 묻은 바짓단 툴툴 털어내며 굽은 허리 다시

꼿꼿이 세워 나는 여기서부터 걷는다.

강둑을 걸으며 강둑길을 앞세우듯

비오리 새끼들처럼 나란히 뒤따라오는 길

둑 밑을 흐르는 물 나직나직 길과 더불어 흐르고

주어가 된 나를 수식하며 도열한 벚나무 사이를

첫길을 내듯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