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상징 이양덕의 「자라나는 혀」김지숙
다시, 상징 이양덕의 「자라나는 혀」김지숙
자라나는 혀
이양덕
아기 주먹만 한 사탕을 빨던 혀가
불그스름한 귓불을 핥더니
기다란 혓바닥을 낼름거린다.
귀마개로 틀어막아도 간교하게 들락거리면서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흑장미를 바치며
달콤한 혀로 홀딱 반하게 해 놓고
비자나무 위에 올려놓은 채 비루하게
사다리를 치워버려 밤새 찬서리를 맞았다.
흐린 창문을 닦고 파란 하늘을 읽으며
비바람에 누운 풀잎이 부서질 듯 써 놓은
문장을 주저 않고 받아 읽어야
향기로운 말을 들려줄 수 있을 테지,
꿀을 빨 땐, 나르시즘에 빠져들지만
독주를 마신 후에야 춘몽에서 깨어나
생의 본질을 알았다.
혀는 붉은 주단이 깔린 욕망의 계단을 질주하며
지향점을 잃은 미혹의 시간 속에서
침을 꿀꺽 삼키고 비겁하게 돌아 서서
날 세워 난도질 했지,
미아가 되어버린 말이 슬픔을 전송한다.
ㅡ이양덕, 「자라나는 혀」전문
화이트에 따르면 상징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며 그 사람이 사물의 의미를 부여하면 그 사물은 비로소 상징화 된다. 따라서 상징은 물리적 형태를 갖추어야 인간의 경험 속으로 들어 올 수 있으며 다양한 상징화는 인간 문화를 구성하는 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시를 통해 세계와의 관계를 맺고 이해하는 시인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게 된다. 정신 분석학에 따르면 상징은 의식을 초월한 어떤 내용의 이미지이고 비합법적이며 무의식적 면을 공존한다. 인체 중 '귀'는 공간의 방향을 뜻하며 '입'은 불의 원리를 상징한다. 입은 말하는 능력 창조력의 발산을 의미한다.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가 만나는 지점인 입은 지상과 하늘에 맞물려 있다. 우리시에서 권척학의 '혀' (「혀 」)에서는 성숙해 나가는 인성을 말을 부리는 혀로 상징화 하고 있으며 천양희의 '혀' (「참 좋은 말」)는 잎으로 비유되고 있으며 혀로 만들어낸 듣기 좋은 말을 상징한다.
이양덕의 시 「자라나는 혀」에서 '혀'가 상징하는 것은 일반적인 육체의 일부인 혀가 아니다. 이 시에 말하는 '혀' 상징은 기존 '혀'가 아니라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변화하는 삶의 모습을 '혀'로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처음 화자의 '혀'가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가 만나는 매개는 '사탕'이다. '귓볼'을 빤다. 그리고 또 다른 확장된 세계를 의미하는 사물인 '흑장미'를 타인에게 바치며 홀딱 반하고, 외적 세계에 해당되는 '독주'를 내면으로 들인다. 독주를 마신 '혀'는 급기야 생의 본질을 깨닫는다. 처음 외적 세계로 내디딘 '혀'를 욕망의 계단을 질주하며 '혀'로 표상하여 결국은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지향점을 설정한다. 그동안 스스로 나아간 변화하는 삶이라는 외부세계의 미혹 속에서, 상실한 자아들이 비겁하게 돌아서서 미아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뒤늦게 파악하고 반성하는 점을 '혀'를 통해서 상징화한다.
이양덕의「자라나는 혀」에서는 인생을 '혀'를 통해 탐미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누구나 지니고 있지만 무심했던 '혀'의 활동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이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김지숙 <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