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시인서재}

아무 일 없는 하루에 대한 慰勞 (외 1)- 이만섭

이양덕 2021. 5. 16. 14:13

 

 

 

 

아무 일 없는 하루에 대한 慰勞

 

 

                                이만섭

 

 

 

화살로 퍼붓는 날빛 빛살을 피하느라

하루 해 정신없이 넘겨먹고

저녁과 더불어 깨어나 휴! 하고 이제 살았구나, 할 때

슬그머니 비애가 끼어든다.

 

심신을 소신한 뒤끝에 돌아보는 하룻길은

일상이라는 채무에 시달린 것이다.

그마져 주마가편으로 질주한 경계점이 영점이라도 되는 듯

허물로 색인되는 오늘은 어제의 닮은꼴

 

빗물이 주룩주룩 퍼붓는 날도

하루 해 넘겨먹기는 매한가지

날짜를 공치면서도 제 구석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해

온갖 고백을 마음에 바치고 끝내 빗장을 거는 것이다.

 

토굴속의 토끼처럼 제 새끼가 몇 마리인지 분간 못해

세고 또 세다가 숫자를 놓치고 습습하게 넘겨먹는

하룻길 또한 어제와 닮은꼴

 

어떤 자에게 생일을 물었다.

숫자를 모르는 그가 기억해낸 끝에

수수깡 엮어 울타리를 올리고 파란 하늘에 비행기 세 대가 날아간 날이라고 대꾸했다. 는 애기가 떠올라

 

슬그머니 두 팔을 머리 위에 올려

거울에 비추듯 허공에 손을 흔들어 본다.

 

....................................

 

보이지 않는 싸움


                      이만섭




나는 나를 사랑하면서 증오한다.
나는 나를 증오하면서 충고한다.
나는 나를 충고하면서 흘러버린다.

두 주먹 불끈 쥐고 과시하는 자세는
공공의 적이 될 수 있어
더 소심하게 더 끈질기게 맞서며
바람이 풀잎을 드러눕히듯 밀고 나아가는 것이다.
완벽은 허점을 감추기 위한 계산방식이니까,

그러므로 무엇을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탈취당하지 않기 위한 고육지계일는지 모른다.

그 와중에 웃는 얼굴을 마주칠 때가 있다.
웃는 낯꽃에 침 뱉으랴,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르지만 
싸움의 기술을 표정으로 방해하는 연환계 앞에
무력해지면 금세 비굴이 살아난다.

이 싸움은 대장간의 쇳덩어리처럼
불과 물 사이를 오가는 담금질만이
철의 승패를 쥐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인내가 최후의 병기가 될 수 없는 자명한 정체성 앞에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진
사랑과 증오와 충고 앞에 흔들리지 않고
상생의 자리를 넘겨받듯
그토록 지배받는 나를 독립시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