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詩밭}

근사하고 품위 있게

이양덕 2024. 12. 4. 12:44

 

 

근사하고 품위 있게

                                  이양덕


느슨해진 현에 활이 닿으면 찌지직거렸다.
눈 뜨면 온종일 자화상을 닦는데
검붉은 색이 바탕에 흘러내렸다
콕콕 찌를 때마다 담요로 몸을 감쌌지만
통증은 질겨서 멈추지 않고
긁힌 자국을 쓰다듬은 등에선 물봉선이 피었다.

슬픈 표정을 애써 숨기려는데
발바닥은 시려오고 석고처럼 딱딱한 정강이뼈가 쑤시면
파란 바다를 담은 눈동자는 나직히 흐느껴 울었다
슬픔조차도 포근한 품에 안아야 될까 
근사하고 품위 있게 안녕을 되물으면서
우아하게, 당연하게 웃으며 맞이하도록,

순서를 모르겠다
두 손 모으고 경배하던 큰 별이 보이지 않고
천변에서 코스모스가 손짓한다
모두 엉켜있다
햇살은 지웠다가 다시 칠하고 알록달록한 무지개색을 쏟아부었다. 

발목에서부터 스멀스멀
복숭뼈에 멍이 들도록 쓰다듬는데
떨어진 바이올린이 오똑한 코를 쳤다
녹슨 소리가 들릴 때마다 수포가 터지고 피가 흘렀다
이젠 노래소리도 지워져간다

눈물이 차오른 헤집을 때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슬픔의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도록 지켜봐준 너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 말 해야 해 사랑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