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바닷가에서 본문
바닷가에서
이만섭
무등을 타고 달려오는 파도가 흰 깃발처럼 펄럭입니다
물떼들은 끊임없이 쫓아와 경계선을 넘어서고
모래알들은 바닷가를 지키려 밤새웠던지
젖은 몸을 뉘어 잠시 아침 햇살에 말리고 있습니다
나도 초계병처럼 어슬어슬 주변을 거닐다가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손을 올려 머릿결을 쓰다듬습니다
혹여 어느 한 쪽을 편애한다는 느낌이라도 줄까 봐
경계선의 손을 살며시 허공에 내려놓습니다
그곳은 내게 가장 자유로운 영역입니다
이처럼 속내를 보일 수 없는 나는 무엇이겠습니까,
모래톱에서 바다의 편을 들 수 없는 것처럼
밀려오는 파도에 발목을 적셔놓고 모래의 편을 들 수 없듯이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나는 모래의 진실을 압니다
모래알들은 흩어져 있는 듯해도
모다기모다기 가슴 속에 지난 세월을 묻어놓고
한 움큼씩 추억을 꺼내주었니까요
파도는 그런 줄도 모르고 저리도 흰 이를 드러내놓고
까르르 웃어대며 내 마음을 차지하려 듭니다
내가 물집을 짓지 못한 이유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파도가 밉습니다
수평선 멀리 떠있는 흰 구름처럼 내가 은연자중 하는 까닭은
아직도 파도에 대한 미련 때문입니다
그 사이 모래는 집을 한 채 더 지어 몸속에 가두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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