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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덕의 詩 文學
그림자 아른거린다 이양덕 눈 뜨면꿈꾸었던 것마다 보였건만한 발 물러나면 흔적조차 만질 수 없어쓰러져 울었다연두를 피워올린 아픔이 흘러내리며보이는 것에 널 던지지마, 다시 감춰진 것을 찾아봐, 난 보이는 것을 지우기 시작했다.눈을 꼭 감았다가습기를 틀고 스킨답서에 물을 주며인공 눈물과 안연고로 눈을 촉촉하게 젹셨다. 산당화가 희끄무레 피었다숨을 크게 몰아쉬어 폐를 부풀렸다노란 애기똥풀이 웃을 때나도 따라 웃었다. 북극성도 달리고 보름달도 달리고잠자리채 매고 줄달음치던 벗들의그림자가 웅크리고 있는 걸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날아 오르고 번식하고 싹 트고 열매 맺는빛나게 살고 있다는 경이로움에 취한 사람들, 빌딩 철탑 뒤에 숨어서 살아야할 이유를 알지..
봄 언덕 오르자 하네 이양덕 내 봄은 더디오고회색 그림자가 드리워있다얼음 조각 부딪히는 소리가 빠지직 빠지직뼈에 숭숭 구멍이 뚫렸는데 호수 위를 성큼성큼 걷는 봄은비단 바람 수양버들 가지에 앉아 연두빛 치맛자락을 펄럭이고 붉은 연지곤지 단장한 산나리수줍은 열여덟이다. 파란 물결을 저어가는 꽃구름폴짝폴짝 뛰어다니는청개구리 소금쟁이가 부러워서몽실몽실 피어오른다 보리피리 부는 저 아이도도화꽃 향기에 아찔해진 봄도 팔짱끼며진달래 언덕 오르자 재촉하네,
봄꽃 이양덕 폭설을 헤치고 와서 호호불며 조마조마 꽃눈이 다칠세라 두터운 껍질을 벗어던진 꽃들 웃음소리가 천지사방에 울려퍼진다 봄소풍 온 꽃들이 전하는 소식을 창문을 활짝 열어 귀 기울이며 실바람이 노닐다 간 좁다란 골목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언덕에서 해맑게 웃어주는 너의 눈빛과 달콤한 향기에 빠져서 눈물이 핑 도는 심한 꽃멀미를 앓는 중,
겨울 아침 이양덕 새벽녘 등불 밝혀놓고 흰 수건을 쓰고 곁눈질할 사이 없이 절구질하는 어머니는 가족이 잠든 미명에 메밀을 빻아 채에 내려 발자국 소리도 가만가만 묵을 쑤어서 반대기에 찰랑찰랑 담아 장독대에 내놓으면 눈 소복이 쌓인 항아리마다 메밀묵인 듯, 메밀꽃 자욱한 한 폭의 그림이다 어금니를 잃은 외할머니를 위해 가지런히 썰어 파 참기름 깨소금 실고추 묵은 간장으로 맛을 낸 보드라운 아침밥상을 지어 올리며 고단함도 잊고 흡족해 하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우리 외할머니 이마에 주름도 말랑거린다. 정강이가 푹푹 빠지는 마당에 눈을 치우는 오빠 참새가 떼를 지어 푸드덕 날면 참새구이 해먹겠다고 덫을 놓느라 부산하고 책 읽는 낭낭한 목소리가 울너머로 퍼졌다 아궁이엔 고구마 달걀밥 익는 냄새 장작타는 소리에 맞..
이유 없는 이유 이양덕 금세 닿을 것 같았는데 아무리 손을 저어도 정막이 빗금칠 뿐 마른 풀잎을 밟고 선 이곳의 느낌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어리둥절하고 낯설고 기묘하다. 뱀이 좇아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분홍 웃음 지으며 돌아가야 할 텐데, 나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며 이유 없는 이유가 반복되는 모호한 순간들 중얼거리는 난, 지루할 때도, 순하게 받아들일 때도, 감정선은 심하게 출렁거렸다. 잎을 떨구는 새벽녘 웅크렸던 가슴을 열고 돌이켜 참회하며 소원을 아뢴다. 해를 품고, 노을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며 이토록 아름다울 줄이야,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가는 땅과 바다와 기암괴석을 두른 봉우리여, 우리여! 머리키락은 희어지고 하루를 움켜잡기 위해 고단했으나 숨 내쉴 때마다 알지 못했던 이유가 명료하게 ..
가을처럼 이양덕 0,01 그램이 전부라고 툭 던져버리고 사라질 점 하나를 위해서 머물지 않고 찢기지 않고 줄기차게 흘렀다 너에게로 내게로 다시 절정을 살았다 한 곳에 고여있을 수 없었다. 무엇을 말하고 생각하고 살까, 어떻게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안갯속인 듯 희미해서 숨이 토막나고 떨린다. 하루 하루가 익숙했던 날엔 갈팡질팡 지루하고 하품이 쏟아지고 무의미해서 새로운 길을 찾아 발이 짓무르기도 했다. 그 영롱했던 순간은 지워져버리고 온화한 눈빛은 흔들렸으며 마음은 울퉁불퉁하다 꽃이 흐드러졌던 길에선 찬바람이 대빗자루로 갈잎을 쓸고 땅끝 모서리에서 간절한 마음은 그리움 뿐, 그림엽서가 간간히 배달되고 어느새 은회색 실루엣이 소파에 드러누웠는데 백지 한 장 손에 든 나를 부인하며 돌아설 수 없었다 봄부터 내..
선을 따라서 이양덕 ㅅ옷자가 마음을 그었을 때 명주저고리의 섶 깃 동정을 따라가다 은은하게 웃는 여인의 얼굴에서 초승달이 뜨고 붉은 색을 머금은 앵두를 보았다. 사람들이 길 위에 수 많은 선을 따라 질서와 무질서를 반복한다. 선을 넘지 않고 응급환자를 태우고 달리던 앰블런스도, 서늘한 바람이 긋고 가면 슬픔의 감정선이 요동쳤다. 화선지 위에 붓을 들어 선을 그으면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고 재두루미 날아들고 영지도 피었는데 저만치 산국화에 취한 궁노루 한놈이 뿔을 한껏 뽑내며 암컷을 홀리는 한 폭의 수묵화다. 선을 넘어 숨 쉬지않고 달리면 피땀으로 쌓은 생이 한순간에 무너져서 혼란과 불안 공포 무질서가 휘몰아치고 말겠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무수한 별을 보라, 밀치지도 밟히지도 칼에 베이지도 않았다..
의문의 시간 속에 이양덕 머리 속에서 의문의 뿌리가 뽑히지 않고 흰 새의 깃털에 파묻혔다 어떤 고통을 맛보아야 끝이 올까 갓 핀 연두를 품고 바닥에 엎드려서 무명처럼 주글주글한 손으로 통증을 쓸어내렸지만 이빨은 날카롭게 하얀 울음 소리를 찔렀다. 기나긴 밤 수치를 알 수 없는 통증과 싸우며 울렁거리는 침대에서 차오른 숨을 내쉬지 못하고 독가스를 들이키는 호스가 관을 통과할 때 박테리아는 서로 엉켜서 물어뜯고 있는데 고통의 한가운데서 달을 꿰뚫고 있는 널, 푸른 초원에 뉘이고 싶었다. 파랑이었고, 꽃이었고, 처마 끝에서 흔들리는 풍경 소리였다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애처롭다. 할미꽃 품에 잠든 산새알을 몰래 숨겨놓고 두근거리던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가파른 길에서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파르란 손금이 물결..
사랑의 방식 이양덕 어디에는 있고 어디에는 없다. 잡히거나 잡히지 않아도 밀쳐내겠다는 태세다. 뜨겁게 타오르던 것이, 뭉클 뭉클 목구멍까지 밀려들어 파돗살처럼 엉키고 흩어지며 직선과 나선을 그으며 티끌 하나를 좇아 왔다. 장미에게 키스를 퍼부으며 사랑만 하고 싶어, 날 붙잡아줘, 풀밭에 엎드려 큰소리로 독백을 읊조리며 오랫동안 머물고 싶어 울부짖는다. 해 뜨는 곳을 바라보지 않고 빗 속으로 뚜벅 뚜벅 걸어갔다 노란 품 속을 파고들 때면 벽을 쌓아도 아랑곳 않는 사랑의 방식 빛의 속도로 부서지고 깨지며 헤쳐왔어도 차가움과 뜨거움은 잔잔한 가슴에서 일어났다. 눈을 감았는데 꿰뚫어 멀리 보고 생의 문항이 지워질 것처럼 난해한 질문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신념은 후회하지 않고 주저앉지 않으며 질주한다..
놀이터 이양덕 동화 속 눈의 나라 아기곰과 놀던 아이는 엄마 손에 붙들려 어린이 집으로 갔다 미끄럼틀엔 나뭇잎 사그락거리는 쓸쓸이 흘러내리고 바퀴가 튕겨나간 세발 자전거는 진흙탕에 박혀 엉엉 울고 있는데 그네에 나란히 앉은 참새들 곧 몰려올 것 같은 아이들을 기다린다. 개나리 유아원에서 엄마 아빠 부르는 말을 배우고 종이배 펭수 로봇 강아지를 그렸다 학원에서 미끄럼 타기 줄넘기 축구를 하고 놀이터에서 놀고 싶지만 학교와 학원을 바쁘게 오가다 캄캄한 밤에 집을 찾아온다 아이들이 오지않는 놀이터를 차지한 비둘기가 새총쏘기 딱지치기 연날리던 개구장이를 불러 세운 할아버지에게 비스킷을 날름날름 받아먹고 헬리콥터 프로펠러가 가라앉은 적막을 가로지르는데 나무 그늘의 키는 무럭무럭 자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