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새를 삼킨 나무 본문
새를 삼킨 나무 / 나희덕
가슴 붉은 새 한마리가
휙, 내 앞을 지나 숲으로 들어간다
저녘 하늘에 선명하게 남은
붉은 빛, 그 빛을 따라
방금 그 새가 앉은 나무에게로 걸어간다
분명히 날아오른 기척이 없었는데
조심스레 다가가 올려다보니
새가 사라졌다
아, 검은 입으로 새를 삼킨 나무
새의 눈동자만 같은
붉고 마른 열매
부리로 제 옆구리를 콕콕 쪼는 소리
낮게 우는 나뭇가지들
그 새-나무 그늘에 아무리 앉아 있어도
끝내 나를 삼켜주지는 않고
어둠만 어둠만 밀려와
닫혀진 문 앞에서 나 오래도록 서성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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