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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삼킨 나무

이양덕 2011. 6. 10. 09:38

 

 

 

       새를 삼킨 나무 / 나희덕 




       가슴 붉은 새 한마리가
       휙, 내 앞을 지나 숲으로 들어간다
       저녘 하늘에 선명하게 남은
       붉은 빛, 그 빛을 따라
       방금 그 새가 앉은 나무에게로 걸어간다
       분명히 날아오른 기척이 없었는데
       조심스레 다가가 올려다보니
       새가 사라졌다

       아, 검은 입으로 새를 삼킨 나무

       새의 눈동자만 같은
       붉고 마른 열매
       부리로 제 옆구리를 콕콕 쪼는 소리
       낮게 우는 나뭇가지들

       그 새-나무 그늘에 아무리 앉아 있어도
       끝내 나를 삼켜주지는 않고
       어둠만 어둠만 밀려와
       닫혀진 문 앞에서 나 오래도록 서성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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