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문안 /조정권 본문
문안 /조정권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말 한 송이 들고
찾아간다
아무런 뜻도 없는 말 한송이 들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그분을 뵈러
철재문을 열고,
나무들이 은둔하는 곳
숲과 새들이 사는 곳으로
이 봄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편안한 말 한 송이 들고
아무런 생각도 없고 아무런 뜻도 없는
말 한 송이는
성당이 없어도 되는 종교 같고
신앙이 없어도 꽃 피는 마음 같고
하루만 피는 색깔들의 꽃잎 같고
그 친척들이 내려뜨린 색채의 투명한 성곽 같고
이슬 여문 꽃 이파리 끄트머리에 둥근 언덕 같다
아무 뜻도 담지 않은 말 한 송이는
하루 종일 그분이 열어 놓은 대문 같고
마중 나오는 길 같고
아직 들어가 구경하지 못한 수정들의 궁전 같고
오래 곰삭인 기쁨 같고
뜯어볼 것만 같은 꽃 봉지 안의 향기 같고
두근거림 같고 아무 뜻도 없는
말 한 송이는
1만 년 동안 햇빛이 돋보기로 들여다본 씨앗 같고
무성하게 자란 관목의 먼 조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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