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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안 /조정권

이양덕 2011. 6. 15. 12:08

 

 

     문안 /조정권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말 한 송이 들고

      찾아간다

      아무런 뜻도 없는 말 한송이 들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그분을 뵈러

      철재문을 열고,

      나무들이 은둔하는 곳

      숲과 새들이 사는 곳으로

      이 봄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편안한 말 한 송이 들고

      아무런 생각도 없고 아무런 뜻도 없는

      말 한 송이는

      성당이 없어도 되는 종교 같고

      신앙이 없어도 꽃 피는 마음 같고

      하루만 피는 색깔들의 꽃잎 같고

      그 친척들이 내려뜨린 색채의 투명한 성곽 같고

      이슬 여문 꽃 이파리 끄트머리에 둥근 언덕 같다

      아무 뜻도 담지 않은 말 한 송이는

      하루 종일 그분이 열어 놓은 대문 같고

      마중 나오는 길 같고

      아직 들어가 구경하지 못한 수정들의 궁전 같고

      오래 곰삭인 기쁨 같고

      뜯어볼 것만 같은 꽃 봉지 안의 향기 같고

      두근거림 같고 아무 뜻도 없는

      말 한 송이는

      1만 년 동안 햇빛이 돋보기로 들여다본 씨앗 같고

      무성하게 자란 관목의 먼 조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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