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조망권(眺望權) - 이만섭 본문
조망권(眺望權)
이만섭
남향집 담벼락에 기대여
은화식물을 키우는 측백나무 그늘
빛을 잃어버린 자리에 이끼처럼 번져간 생명들
봄이 와도 꽃 피우지 못해 창백하다
그늘은 허구한 날
하늘의 구름과 지상의 산이 어깨를 겨루듯
한 발자국도 물러설 줄 모르고
그 사이로 자취 감추었던 해가 얼굴 드러내면
개들이 먼저 쫓아 나와 짖어대는 것이다
풍경은 어느 사이 이방인의 표정이 되었다
나무는 무단 침입한 그늘에 대해
가지마다 별방울을 매달아 변명이라도 하듯
일방적인 생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버거운 운명을 견뎌내는 힘은
별의 풍경을 꿈꾸는 데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귀담지 않던 어느 날
창에 뻗쳐온 그늘을 말끔히 지워버린 남향집 담장 가에
빛의 차양처럼 하늘에 걸려 있던 흰 구름 내려와
스러진 교목을 한일자로 타고 앉아
고물고물 흩어져 있던 은화식물의 귀에 대고
잃어버린 봄의 주소를 일러주고 있었다
총총, 더불어 나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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