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늙은 활선공 ㅡ 이영주 본문
늙은 활선공
이영주
고압전선에 앉아 있어
새처럼 발을 모으고 어깨를 안으로 집어넣을까
바람 안에서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면 아슬아슬하게 건너갈 수 있을지
공중에 드리워진 선
타오르는 자기장
나는 위로 올라와 지상에서 떠도는 목소리를 들어
전도체를 타고 흘러 다니면 이상한 음악이 되는
사물들이 숨을 죽이고 조금씩 잘려나가는 순간
나는 현기증을 앓고 있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성되는 구름
바람보다는 구름이 통과하는 선
수많은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밥 냄새
나는 그 공포 사이를 걷지
구름을 꼭 잡고
고압전선을 이어붙이면서 나는 마른침을 삼키네
꿀꺽
뼛속으로 들어오는 불의 감각
어느 순간 바람 안에서 재가 된다면
바닥보다 더 깊은 밑으로 떨어지고 싶다
아무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흩어지는 것 되고 싶다
내가 가진 재주는 허공에서 선을 타는 것
위로 올라와 현기증을 앓는 것
처참하게 무너지는 순간을 예감하는 것
새들이 전선에 모여
어느 활선공이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지
듣고 있네 발톱을 세우고 깃털을 툭툭 털어내며
고장 난 고압전선을 이어붙이는 사람
그 사람은 가장 조심스러운 발바닥을 가졌지
공중에 걸쳐 있는 발바닥에서 음악이 시작되고 있다
울고 있다
—《현대시》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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