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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이마 위에 씌어지던 서정시

이양덕 2012. 1. 18. 16:16

새들의 이마 위에 씌어지던 서정시

 

  이미란

 

 

 

나는 또 생각하는 것이다

영화를 볼 때마다 힘찬 날갯짓으로 솟구치던

새들의 둥근 이마를

그 새들이 차고 날아간 해의 심장 위에 씌어지던

먼 옛날의 서정시를

이제는 사라진 자막 없는 애국가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닿도록 부르던

그 시대의 푸른 서슬 같던 낭만을

 

세월은 흘러 흘러서 어디로 가나

불빛은 흘러 흘러서 어느 저녁을 서성이나

밤 깊은 거리엔 헐벗은 시간의 발자국이 흩날리고

친구를 잃은 사람들의 무거운 외투는

십이월 간판 밑으로 안개처럼 스며드는데

한 국자의 뜨거운 애사를 간직하지 못한 우리는

도망치듯 가방을 메고 손을 흔들며

가랑잎 같은 택시를 타고

협궤열차를 닮은 전철을 타고

마지막 질주의 투명한 버스를 타고

내일의 안녕을 위해 제 각각의 집으로 사라져간다

 

새들의 이마 위에 우리는 이제 어떤 시를 써야하나

그 옛날 영화를 볼 때마다 애국가를 따라 부르며

가슴 벅차게 의자를 당기던 시절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그 시절의 울분을 달래주던 가난한 낭만의 세월과

청춘의 자막 뒤로 흘러가버린 눈물 같은 서정시를

이제는 무엇이라 이름 붙여 불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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