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종이컵, 그 입술에 대한 예의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종이컵, 그 입술에 대한 예의

이양덕 2013. 4. 18. 13:01

 

 

 

 

 

종이컵, 그 입술에 대한 예의

 

 

 

 

 

이만섭

 

 

 

한 사람이 방금 그와 주고받은 입술을 팽개치며 자리를 떠났다

 

또 한 사람이 방금 그와 주고받은 입술을 팽개치며 다시 자리를 떠났다

 

모두 그렇게 마지막을 확인할 여유조차 없이

 

바닥에 뒹굴면서도 아직 온기를 간직한 입술들,


충격에 빠진 듯 멍하니 벌린 입 다물지 못해


고스란히 드러난 혀의 얼룩들,


사랑은 그렇게 끝났다

 

종이컵은 왜 입술을 달고 태어난 것일까,


한 번의 사랑이 독이 될 줄 몰랐다


서로 입김을 올리며 다정했던 자리


무덤처럼 삭막하다


저 무례한 시간 밖에서 오는 다른 한 사람


입술 나눈 적 없는데


등 굽혀 조용히 거두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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