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맛있는 여름 - 이만섭 본문
맛있는 여름
이만섭
그해 여름, 우리는 초식동물을 사냥하려 밀림으로 떠났다 흙먼지 폴폴 이는 황톳길을 터벅거리며 다다른 밀림은 익히 우기가 있고, 맹수가 있고, 모기떼 같은 더위가 차지한 터에 우리 모두 그편에 적응하는 몸짓을 키워왔는데 숲에 들어서자마자 어김없이 반기는 모기떼들, 반바지와 민소매는 장딴지와 팔뚝 부위의 살집에 든 피를 내주고 숲 가운데로 들어가는 길을 얻었다 한 차례 뜨거운 피를 건네주고 풋내나는 푸름을 얻고 보니 이내 밀려오는 공복감에 때맞춰 한 무리 사자 떼와 마주친 것이다 즐거워라, 저들의 한 때는, 생을 변주하여 식량을 얻을 요량으로 몰려오는 형형한 눈빛들은 한 차례 전쟁을 예고하고 그것은 저들만의 방식이기에 우리는 협상을 택했다 각자 팔다리 가운데 하나씩 떼어 맹수들에게 나누어 주고 더불어 살아남기로 했다 그래서 얻을 수 있는 자유라면 살아남은 자의 승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때 사자 떼와 우리 일행 사이의 간격을 벌려놓으며 가젤 무리가 우리의 모험을 싹둑 잘라먹는 거였다 사자는 이내 가젤을 쫓고 그 뒤로 우두커니 서 있던 아까시나무 아래 도착하여 우리 모두 불로 익힌 어름 같은 맛을 즐기며 모쪼록 오수에 들었다 우리가 쉴 때 밀림도 휴식에 들었다 가끔 맹그로브 숲에서 티티새들이 한낮의 노래를 들려주었지만 피곤했던 우리는 그것이 우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머지않아 온몸이 비에 흠뻑 젖어야 할 판이었다 그래도 가장 안전한 밀림의 식사를 위해 초식동물 대신 우리는 햇빛이 익혀내는 초록의 풋풋한 맛을 즐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