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말 - 이만섭 본문
말
이만섭
말이 강가에 도착했다 광야를 달려와 땀 푹푹 젖은 고단 위에 뿌옇게 내린 흙먼지를 닦아내며 호흡을 고르고 있다 절기는 소만小滿이라서 하늘엔 구름 하얗게 부풀고 들풀은 새뜻하다 버드나무에 고삐를 매어 쉴 때도 자세 반듯하다 서 있는 질서다 잔등에 샛바람 얹혀 버들가지 낭창거리는데도 저렇듯 자신에게 엄격할 줄 아는 까닭에 여기까지 천 리를 걸어왔으리라 네 귀에 건각을 도열한 근육질의 형식은 앞으로도 천 리를 걸어갈 수 있도록 나무가 정자처럼 그늘을 지으니 잠시나마 말굽 아래 풀밭을 구유로 삼았다 역마살이란 것도 인두질로 박아 넣은 말굽의 징을 써먹기 위한 것인데 이제까지 발판에서조차 감옥이었을 견강부회로부터 완장을 걷어내고 채찍을 맞아가던 치욕스런 둔부는 한 고집 쇠귀가 되어 제 꼬리채만을 휘둘러 생명의 목록이 펼쳐진 초원을 향해 질주할 태세다 워워ㅡ 어디선가 호명하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 말이 허공에 목을 길게 빼 히힝- 하고 고삐를 풀어재끼며 다그닥다그닥 뛰쳐나간다
- 이미지: 윤두서의「유하백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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