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구름으로 만든 빵 - 이만섭 본문
구름으로 만든 빵
이만섭
이 도시의 집들은 굴뚝이 없다
집들만 굴뚝이 없는 게 아니다
오래전에 이주해온 빵가게도 다르지 않다
빵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아침 일곱 시와 저녁 여섯 시 두 차례에 걸쳐
빵가게는 냄새의 시간을 알려주고
사람들은 칸트의 시계처럼 일과를 챙긴다
빵은 어쩌다가 사물이 되었나,
집들이나 사람들 가득한 세상인데
빵을 기다리면서도 재촉하지 않는 사람들,
바구니에 바게트를 담아 감상한다거나
케이크보다 케이크 상자가 차라리 더 화려하다
비가 오는 날에도 공친다는 말은 낡은 유물이 되었다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은 없다는 듯이
빵을 즐기는 패러다임이 있을 뿐이다
가령, 빵 냄새가 빵보다 좋을 때
냄새를 맡는 동안 애인을 생각할 수 있고
애인이 아니어도 한 끼의 시간이 가벼워지는 것인데
그런 감정을 공유할 때 빵은 하늘에 걸린 구름
허공을 떠다니는 부푼 형식으로 고픈 배를 위로한다
이 도시의 집들이나 빵가게가 그렇듯이
사라진 굴뚝을 대신하여 구름에서 가져온 빵 한 조각을
기꺼이 나누는 것을 마다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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