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그늘이 사라졌다 ㅡ 이만섭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그늘이 사라졌다 ㅡ 이만섭

이양덕 2015. 10. 10. 17:38









그늘이 사라졌다


     이만섭




산책로 벚나무들

햇볕에 까맣게 탄 등걸을 보이며

서쪽을 향해 터벅터벅 걷는다

발등을 덮는 낙엽들을 밀어내며

제 그늘에도 쉬어가던 지난여름 나뭇가지에

매미 불러 노랫소리 한가로울 때

세상은 얼마나 푸른가, 서로 견주던 어깨들인데

그런 초록은 어느새 시들해졌다

길가의 풀숲은 寒露 즈음에 때맞추었나,

새치 돋아난 머릿결처럼 드문드문 길을 재촉하고

파수꾼 같은 가로수들 돗자리로 써먹던

그늘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저물녘 서쪽 노을에 길 터주느라

공중에도 두 줄 나누어 날아가는 새떼들

쓸모에서 점점 멀어지던 그늘은

무구한 자취로 홀연히 떠났나,

나무에 다녀가는 저녁 빛이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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