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전설의 록가수 김경호 본문
본좌급 라이브 실력, 특유의 미성과 날카로운 고음, 폭발적인 샤우팅, 그리고 무지막지한 무대 매너와 퍼포먼스로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던 본좌급 락커. 또 락커로서는 정말 드물게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 1위 곡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히트곡들도 꽤 있는 대중 가수이기도 하다.[4]
별명으론 국민 언니, 로큰롤 언니, 상남자, 주부 락커[5], 깜찍이 락커[6], 예쁜 치타, 노친네(...)[7] 등이 있다. 별명만 봐도 알겠지만 상남자와 언니라는 정반대의 캐릭터가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근데 둘 다 잘 어울린다
2. 활동[편집]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인해 이사를 많이 다녀서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왜소한 몸집과 하얗던 얼굴 등으로 인해 학교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많이 당해왔다고 한다. 학교 폭력으로부터 지켜주던 친형을 존경해오다가 축제에서 기타 치고 노래하던 형의 모습을 보고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된다.자만이 전설을 만든다 처음부터 락 음악만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이선희, 조용필, 해바라기 등의 노래도 좋아했는데 변성기가 없음으로 인해 여자 가수 노래를 즐겨 불렀던 점, 한순간에 휘어잡는 밴드의 무대 모습을 보고 락 음악을 선택하게 되었다 한다.
고등학교 재학 중인 1989년 KBS 제2회 청소년 창작가요제에서 '꿈 그리고 사랑' 으로 동상, 1991년 대학가요제에서 '긴 이별' 이라는 곡으로 동상을 차지했다. 그때만 해도 그냥 발라드일 뿐 무대 위에서 머리를 흔들고 샤우팅을 구사하는 지금의 김경호의 느낌과는 매우 달랐다. 후에 '긴 이별' 은 1집 앨범에 편곡되어 실리게 된다.누구세요? 촌스럽다 사실 가창력과 의상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함이라 카더라
세션을 잘 해주지 않기로 유명한 이현석이 김경호만큼은 자신이 책임 진다는 말을 할 정도로 전폭적으로 지원한 첫 시작 '마지막 기도'.[8]
그 후 1994년 1집 '마지막 기도' 로 정말 충격적인 데뷔를 했다. 비록 본인이 직접 생각하기도 싫은, 완전 망했다고 말할 정도로 성공한 앨범은 아니었지만 무지막지한 고음과 파괴력 있는 소리로 대중의 기억에 확실히 남게 된 것.[9]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기타리스트 이현석의 무대에 오프닝 등에 서면서 무대 경험을 쌓아나갔다.
그리고 1997년 발매한 2집 타이틀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이라는 곡은 락이라는 한계를 가지고도 88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sbs tv 가요 20,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2주간 1위를 차지했고 당시 락커들에게는 금기(?)의 구역이었던 가요 TOP 10에서는 dj.doc, h.o.t와 함께 1위 후보까지 오르는 등 선전하면서 히트를 쳤다. 특히 골든컵을 차지했던 임창정의 '결혼해 줘'와 대결했을 때는 한 표(1892:1891) 차이의 접전을 펼치기도 했다.(참고로 가요톱텐에서의 공동 1위는 1991년 12월 25일 방송분에서 골든컵을 탄 김현식 '내 사랑 내 곁에'와 김정수 '당신'이라는 곡이 유일하다.)[10]
이 뮤직비디오에서도의 이미지 또한 락 그 자체였다. 흑백 영상에서 장발과 마른 몸매를 가지고 홀로 나와 웃통을 벗고 열창하는, '락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느낌이었다.
1997년 가을 연세대에서 열린 가을 콘서트에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열창하는 김경호의 모습이다. 20여년 전에 그 당시에 저런 무대가 있었는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만들었다.
2집 발매 이후 출연하게 된 프로그램 '이소라의 프로포즈' 의 신인 가수 소개 코너에서 타이틀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과 스키드 로우의 'Youth Gone Wild' 를 열창했는데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2집 앨범 선 주문만 50만장이 들어왔다고 한다.
김경호가 이런 가수였다. 김경호는 '하루 아침에 모든 게 바뀌어 있었어요' 라고 당시를 회상했다.[11]
이후 후속곡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2집 수록곡 '금지된 사랑' 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고 3집 '나의 사랑 천상(天上)에서도'(52만장), 4집 '비정'(20~30만장), 5집 '와인'(20~30만장)[12] [13] 등이 히트하면서 최정상급 락커이자 대중 가수로 거듭나게 된다.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대중에게서는 멀어지게 되었지만 그의 활약은 콘서트에서 계속되면서 폭발적인 무대 매너와 지치지 않는 고음으로 동시대 가장 많은 관객을 모았고 대학 무대, 그리고 자신의 데뷔 무대인 대학가요제에서는 거의 매년 게스트로 나올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당시 기사를 봐도 라이브 잘하는 가수 1위는 단연 김경호. 참고로 저 기사에서는 2위로 박정현이 꼽혔는데 김경호와 박정현은 나가수에서도 1위를 가장 많이 기록한 가수들이다!
그러나 5집 활동 전부터 있었던 소속사와의 불화로 인하여 소속사를 나와 개인 회사를 차리고 본인이 모든 것을 감독하며 발매한 6집 앨범이 대중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게 되고[14] 공연 연습을 하던 도중 찾아간 병원에서 성대결절이라는 가수로서 치명적인 진단을 받게 되지만[15] 이를 무시하고 다시 새로운 소속사와 만나 매니아만이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락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걸그룹 핑클의 'Now' 를 리메이크하여 2003년 7집 앨범을 발표한다.[16]
데뷔 이래 고수해 왔던 로커의 상징인 긴 머리를 자르고 음악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예능에도 출연하며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변화를 시도했지만 락부심 충만한 일부에선 변절자, 배신자, 자존심까지 버린 락커라는 비난을 했고 또한 점점 심해져간 성대결절로 인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자 결국 김경호는 평단에서의 외면과 앨범 실패 등으로 인해 퇴물이라는 혹평을 받으며 잊혀져갔다.
2004년에 데뷔 10주년 7.5집을 발매했으나 활동 없이 일을 중단하고 집에서 칩거생활을 하다가[17] 2006년에 8집 앨범을 발매하고 공연과 콘서트 무대 활동을 다시 시작하며 재기를 꿈꿨지만 뮤직비디오 촬영 도중 찾아간 병원에서 희귀병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 이란 진단을 받게 되면서 앨범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그 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고음을 버리고 중저음의 미드 템포 발라드를 부르면서 최악이었던 목 상태를 어느 정도 회복시켰다. 인터뷰에서 가온다를 기준으로 3옥타브 미까지는 가능하게 됐다고 밝혔다(전성기 때는 4옥타브 파~솔까지 올라갔다고 한다[18]). 나아가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미성을 극복하고 진성을 위주로 한 힘 있는 보컬이 가능하게 되었다. 2009년~2010년대 초반쯤엔 보통 남자들 정도의 음계로 노래를 불렀으나 이후 중고음대의 공격적인 창법을 이용하며 음역대를 회복해갔다. 2014년 6월 26일 엠넷의 音담패설에 출연하여 보여준 그로울링 창법[19]이 그 예.
2014~2015년의 활동으로 보았을 때 음이 단계적으로 올라간다 가정할 경우 현재 실질 최고음은 3옥파브 파#~솔#(솔)으로 보인다.[20]
2014년 말 무렵부터는 전성기 시절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샤우팅이 부활했다. 김경호 본인도 2014년 중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목소리가 점점 열리고 있다는 언급을 했었고, 본격적으로는 2014년 돌발 콘서트 즈음부터, 방송에서는 불후의 명곡 무대인 '고추잠자리'부터 샤우팅을 구사했다. 비록 전성기와 같은 초고음을 바라는 건 무리지만, 사실상 전성기 시절의 진성+샤우팅 조합이 부활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불후의 명곡 방송을 보면 샤우팅 음역대를 회복할 때 단기간에 이룬것이 아니라, 경연 무대를 준비할 때 마다 꾸준히 확보해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회복해나가다가 243회 경연곡 '초우'의 편곡에 매쉬업한 영원의성 후반부 샤우팅을, 원곡에서 1키나 올려 3옥타브 파#(F#)까지 올렸다.
젊은 시절 때보다 샤우팅의 사운드가 다소 약하단 의견도 있으나[21] 이 샤우팅의 유무는 김경호가 무대를 꾸미는 데 있어 굉장히 크다. 소위 말하는 전성기 시절, 김경호가 빠른 메탈 곡을 소화할 땐 간주 중간마다 3옥타브 솔~라 정도의 사우팅을 냄으로써 흥을 돋우고 무대의 사운드를 채웠다.[22] 그러나 샤우팅을 잃은 후, 김경호는 샤우팅이 들어가야 할 곳에 ‘어이!’나 2옥타브 라~시 정도 되는 ‘워~이예’ 등의 중음역대 애드립을 사용해 관객 호응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창법운영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성대 결절을 겪고도 어느정도의 음역대를 수복한 김경호는 나는 가수다 무대에서 1위를 4번이나 차지하는 등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예전의 압도적인 메탈 무대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아쉬움이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되살아난 샤우팅을 통해 메탈 무대를 다시금 화려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샤우팅이 들어가지 않은 140823 ‘첫차’ 무대와 샤우팅이 들어간 151003 ‘첫차’ 무대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샤우팅 부활의 위력은 불후의 명곡 247회에서 '돌팔매'가 첫대결 최고점에 올킬을 기록하면서 여실히 증명되었다.
2011년엔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맹활약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았고 2012년 초 명예졸업에 성공, 2014년 8월부터는 불후의 명곡에 참가 가수로서 출연, 2015년도에 펼쳐진 나는 가수다 3 경연에도 참여 했다. 자세한 건 하위 항목 참조 바람.
2015년 6월부터는 중국에서 공연 활동을 할 예정이며, 몽면가왕에 등장한 이후 꽤 인기를 얻고 있다.
2015년 말 락크리스마스 콘서트와 2016년 3월 19일 돌발콘에서의 모습을 보며 전성기가 다시 찾아온 것이라 평하는 사람들이 많다.[23] 농담이 아니라, 무려 '탈출'을 키조정을 거쳐서나마 부른게 현재시점에서 5번째이며, 특히 돌발콘에서의 '탈출'은 전성기 못지 않다는 평.[24] 물론, 여전히 난도는 높은 곡이라 가수 본인도 힘겨운 모양인지 '탈출은 힘들면 올리지 않을 수도 있으니 양해바란다'고 언급해서 자주 들을수 있는 곡은 아니겠지만, 가수 본인의 컨디션이 받쳐만준다면 들을 수 있는 확률은 높은 셈이다.[25] 게다가, 요즘들어 리즈시절의 메탈곡 뿐만 아니라 록 발라드에서도 초고음 애드립이 아닌 한 소화할 수 있는 곡도 많아졌다.[26]
3. 공연 장면[편집]
1997년 KBS 가요톱텐에서 방영된 2집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공연장면
1998년 SBS 인기가요에서 방영된 2집 후속곡 '금지된 사랑' 공연장면
2000년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방영된 대표 헤비메탈곡 '탈출', 'SHOUT' 공연장면
1997년 가을 연세대에서 열린 윤도현 콘서트 게스트 출연, 'To hell with the devil' 공연장면
4. 락커로서[편집]
4.1. 보컬[편집]
김경호의 보컬은 80년대 헤비메탈의 영향을 많이 받아 발성부터 스타일까지 그 시대의 주류였던 메탈 음악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김경호가 동경하고 롤모델로 삼았던 보컬은 메탈갓으로 유명한 주다스 프리스트의 보컬 롭 핼포드, 역사상 최고의 록보컬로 꼽히는 Queen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풍부한 성량과 표현력을 바탕으로 롭 헬포드와 함께 헤비메탈 최고의 보컬로 꼽히는 레인보우와 블랙 사바스의 보컬 로니 제임스 디오, 그리고 보이스 컬러면에서 가장 비슷했던 크리스천 메탈 밴드 Stryper의 Michael Sweet 등 80년대 유행했던 헤비메탈 보컬들이었다. 물론 당시에 위의 슈퍼스타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거나 동경하지 않았던 락 보컬들이 거의 없기도 했지만.[27]
임재범과 이승철이 딥 퍼플의 보컬이었던 David Coverdale, 김종서가 Led Zeppelin의 보컬 Robert Plant의 커버로 보컬을 연마했다는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 락 보컬들의 상당수가 자신들이 동경했던 유명 해외 보컬들의 모창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김경호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러 해외보컬들을 커버했고, 그 중 Michael Sweet의 커버가 유명하다. 김경호 특유의 발음 엑센트 에에가 마이클 스위트의 발음과 거의 닮았던 적도 있었다.
김경호의 'To Hell With the Devil'
이와 같이 김경호는 Michael Sweet의 보컬을 가장 많이 커버했으며, 오디션을 볼 때 Stryper의 발라드 명곡 'Honestly'를 주로 불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오디션에서 자주 떨어지는 고배를 마시기도 했는데, 기획사에서는 댄스 음악을 권하고 김경호는 록 음악을 지향하는 등의 괴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편,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도 구로공단의 작은 월세방에서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 쓰며 꾸준히 연습해 창법을 연마해 나갔고, 그 창법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샤우팅 창법이다.
뿐만아니라, 김경호는 80년대의 보컬들 중 무대 액션이 컸던 Queen의 프레디 머큐리, 스키드로우의 세바스찬 바흐, 미스터빅의 에릭 마틴 등의 무대매너를 참고했고 자신만의 액션, 헤드벵잉 등을 추가해 올드한 향수를 풍기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독보적인 컨셉과 스타일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올드하면서도 마초적인 느낌이 강했던 80년대 헤비메탈 록 보컬들의 이미지와 강력한 4옥타브를 넘나드는 샤우팅 창법을 마스터하고 좀 더 극적인 무대 연출까지 더해져 나온 괴물이 바로 '김경호' 였다.
4.2. 인지도[편집]
대중들은 김경호를 국내 최고의 락커 중 한 명으로 꼽는데 이견을 가지지 않는다. 보수적이라는 락씬에서도 '김경호 같은 보컬이 한 명만 더 나와줬으면...' 이라 생각할 정도. 김경호는 락 발라드로 인기몰이를 했지만 정작 자신의 공연에서는 발라드보다 강렬한 락/메탈 넘버들을 더 많이 불렀다. 즉 김경호는 실력과 대중성을 둘 다 잡은 락커라 할 수 있다.
여담으로 자신이 직접 곡을 쓰지 않는다고 까는 안티들도 가끔 있는데 김경호의 자작곡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 데뷔도 자작곡으로 했으며 음반 프로듀싱에도 참여했다.[28] 애초에 김경호는 록 보컬리스트를 지향한 것이지 작사,작곡, 노래를 전부 하는 싱어송 라이터를 지향하지 않았다. Rocker란 록음악을 하는 사람을 통틀어서 지칭하는 것이지 싱어송 라이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김경호의 엄청난 고음은 중고딩들이 고음병과 발성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 원인이 되었고 쓰잘데기 없는 발성 지식과 고음 내는 방법 등 속칭 입발성을 널리 퍼뜨리는 데 일조했다.[29] 물론, 김경호 본인이 의도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예전만큼 많지는 않지만, 아직도 포스트 김경호를 꿈꾸는 꼬꼬마들이 있는데 위대한 탄생에서 김태원이 말한 적이 있듯# 김경호의 노래 스타일이나 발성은 굉장히 유니크한 것으로 그렇게 노래를 잘하기는 굉장히 힘들다. 발성적 지식을 모르고 함부로 따라하다간 나쁜 버릇이 들기 딱 좋다.
2000년대 노래방 교주는 SG워너비와 버즈였고 90년대 후반~말기의 노래방 교주는 김경호였다. 왠지 난이도 차이가 넘사벽인 것 같지만 넘어가자
5. Discography[편집]
김경호/디스코그래피 항목으로.
6. 특징[편집]
6.1. 언니[편집]
취미는 그릇 수집과 화장품 샘플 수집. 나가수에서 그렇게 밝혔다. 부쩍 늘어난 아줌마 팬들이 화장품 샘플을 많이 보내준다고 한다.
특기는 집안일. 2집 활동 당시 라디오에 출연해서 잘하는 음식이 닭볶음탕이며 자주 만들어 밴드 멤버한테 먹인다고 했다. 그러나 그 실력은 미지수
좋아하는 색은 분홍색. 정말 엄청 좋아한다. 윤도현의 뮤직쇼에서 자신이 여성이었다면 분홍색으로 집을 도배했을 거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 당시 라디오 방송에서도 팬카페 단체 티셔츠가 언젠가 핑크였던 것을 밝히기도(...) 했다. MBC 파일럿 방송 백투 더 스쿨에서 본인의 가방에서 핑크색 필통을 꺼내기도 했다...
혼자 사는데도 집이 너무나 깔끔한 데다 피부가 약해 여자 화장품을 쓰는가 하면 긴 생머리를 가졌고 신장 178cm에 체중 59kg라는 몸매 등으로 인해 나가수 여신[30] 중 한 명으로 꼽히게 된다.
별명은 경호 언니, 락 언니, 국민 언니, 락큰롤 언니 등등... 2011년 12월 26일에 방송된 놀러와에서는 자신을 락큰롤 언니라고 칭했다. 이젠 뭐 자신도 적당히 즐기는 듯. 사실 락 언니 이전에 락 마미라는 별명도 있었으니 지금은 오히려 한 단계 어려졌다. 친구인 윤도현의 별명은 과하게 '베이비' 가 된 거에 비하면 적절하긴 하지만. 게다가 김경호 본인도 김태원의 별명인 '국민할매' 보다 훨씬 낫다고 좋아했다.
백지영은 김경호를 나가수 5대 미녀 중 한 명으로 꼽았다. 1대 백지영, 2대 박정현, 3대 옥주현, 4대 장혜진, 5대 김경호. 김윤아는 왜 없냐고? 자우림은 미소년 밴드라 그렇다 카더라 게다가 나는 가수다에서 어린 팬이 직접 그린 팬 아트에는 김경호가 긴 머리 언니로 묘사되어 있었다.
고정 라디오 프로그램의 청취자 주문으로 김연우와 함께 커플룩 투샷을 찍은 적도 있다. 이 사진 때문에 김연우가 위장 결혼했다는 소문이... 문제의 사진은 김연우와 김경호가 부른 MBC 로고송 영상의 첫 장면에도 나온다. 그리고 케이블 MAGAZINE1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해당 사진에서 김경호의 얼굴을 지워놓고 김연우의 아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여보세요?
긴 머리와 여자마저 능가하는 뒷태 때문에 지하철에서 치한의 기습을 당하기까지 했다. 이때 김경호의 반응은 걸걸한 목소리로 "아따 취향 독특하쇼잉"(...) 치한이 놀라서 달아났다. 바리에이션으로 '신났다 신났다' 도 있다[31]
6.2. 의외의 모습[편집]
기계치. 2집의 성공 덕분에 큰 TV를 장만했을 때 리모컨을 잘못 만져서 화면을 12분할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난감하게도 원상 복귀하는 방법을 몰라 뒤늦게 매니저가 와서 고쳐주기 전까지 그 상태 그대로 TV를 계속 봤다고 한다.
더불어서, 엄청난 컴맹이기도 하다. Ctrl+C와 Ctrl+V를 몰랐다고 한다. 또 더불어서, F5(새로고침), 메모장 기능과 확장자 등등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모양. 본인 말로는 인터넷 쇼핑 장바구니 기능도 잘 모르겠어서 물건은 그냥 직접 나가서 산다고...
춤을 꽤나 잘 추는 편. 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는 댄스스포츠 서바이벌인 댄싱 위드 더 스타 시즌 3에 참가하여 준우승을 기록하였다. 본인 말로는 앨범 홍보하러 나왔는데 어쩌다 보니 준우승까지 하게 되었다고. 파트너는 시즌 1에서 문희준과 함께 우승을 했던 안혜상.
무대에서의 카리스마 있는 모습과는 달리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는 여성스러운 평범한 말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종종 예능 등의 방송에서도 흥분하면 사투리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걸 목격할 수 있다. 갭 모에? 사석에서 친한 이들에게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다고 한다.
라디오 스타에서의 김경호는 매우 겸손해 보인다. 하지만 놀러와에서는 컨셉이라고 밝혔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나운서 출신이다. 아버지도 방송에서는 표준어를 구사하다 녹화가 끝나면 사투리 모드로 돌아온다고. 아따 오늘 발음이 겁나 꼬이네잉
박완규는 '96년부터 경호 형에게 여자친구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너무 잘해줘서 이용만 당하다 결국 상처받았다' 고 말했다. 김경호는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사랑했으니 충분하다고 답했다. 관련 기사.
7. 출연 프로그램[편집]
김경호/출연 프로그램 참고.
8. 트리비아[편집]
서지원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같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고정 게스트로 참여했었다고 한다.
동갑내기인 김연우와는 라디오 게스트로 같이 출연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90년대 아이돌 열풍 세대에 나온 가수라 그런지 아이돌 학살 영상이 존재한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김종국 목소리가 조금 들리는 것을 제외하곤 거의 김경호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중간중간 본인이 생각해도 심각하다고 여긴 건지 뒤로 빠지는 모습 역시 확인할 수 있다. 여담으로 가창력과 더불어 비주얼도 튄다 임창정마저 묻어버린건 덤 크리스마스 특집 방송.
핑클의 노래인 'Now' 를 리메이크 했을 당시 락부심 충만했던 후배 박완규와 사석에서 멱살을 잡을 정도로 대판 싸운 적이 있다. 자신의 롤모델로서 존경하던 선배이자 형의 변절한 듯한 모습에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매우 절친한 동료인 박완규가 자신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김경호는 소속사의 압박으로 할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머리를 잘랐다고 한다. 박완규가 김경호의 모습을 처음 본 건 박기영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였으며 여기서 김경호는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잘랐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어서 "요즘 시대에 락 음악은 안 돼, 변신이 필요해" 란 식으로 거짓말을 했고, 여기서 빡친 박완규가 그 자리를 다 엎어버렸다고 한다. 그 후 2년 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박완규가 다시 용서를 구하면서 전화를 하고 무릎을 꿇은 뒤[32][33] 화해를 했다고 한다. 라디오스타에서 김경호 왈 "이녀석, 제가 골반춤 추고 예능 나갔을 때 그리도 절 욕하더니 2년만에 전화 와서 같이 '찾아라 맛있는 TV' 하자고 하더라구요". 박완규 지못미 현재는 듀엣은 물론이고 공연도 같이 한다.
작곡가 박정식과의 인연으로[34] 투니버스에서 방영한 은혼의 오프닝곡 '질주', 원피스 7기 오프닝곡 '꿈이 있기에' 를 부르기도 했다(둘 다 신동식 PD 작사). 함께 작업했던 신동식 PD의 블로그에 따르면 처음으로 부르는 애니메이션 주제가 섭외였지만 흔쾌히 응해주었다고. 또한 KBS 애니메이션 메타제트의 오프닝을 부르기도 했다.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에서 성공한 더쿠백청강을 위해 스케줄을 잡았다고 언급했고 실제로 출연하여 듀엣 무대를 선보이게 되었다.
2011년 12월 절친인 김연우와 함께 MBC 로고송을 불렀다. 엠빅 종합편, 연우&경호. 사랑보다는 우정 두 분 예쁜 사랑... 아니 우정 나누세요
독거총각 생활이 너무 외로워 키우고 있는 말티즈 반려견 뭉실이와 루루가 있다. 이름 봐라 이에 대한 부러움으로 디시 김경호 갤러들은 본인들을 뭉실이라고 부른다(...) 여담으로 예전 애완견 이름은 김종서와 강산에였다고 한다. 종서야~ 산에야~
김경호갤의 한 갤러가 뱅헤어로 합성한 사진이 있는데 이건 뭐...
김경호갤러리에서 어쩌다 찍힌 고구마 먹방이 요리경연 대회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지못미
의외로 춤을 잘 춘다.
7분 10초부터
음악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데뷔 시절부터 자신의 콘서트 등의 무대에서 많은 춤을 보여준 바 있다.[35]
최재훈과 노래 주점에 갔는데 김경호가 최재훈을 음정박자 못 맞춘다고 혼내고 최재훈은 이런 데까지 와서도 그런 걸 따지냐고 화내고 해서 둘이 한 판 붙었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둘이 화해하고 듀엣곡을 불렀다고(...)
2014년 5월 음악방송 100초전에서 크레용팝의 '어이'를 불렀다. ABBA의 80년대 히트곡 'Gimme! Gimme! Gimme!'와 섞어서 불렀는데[36] 노래만 한 것이 아니라 크레용팝 복장을 한 댄서들을 대동하여 크레용팝의 춤을 완벽하게 재현하여 충격을 주었다. 결과는 1등. 노래가 끝난 후 크레용팝의 왕팬이라고 밝혔다. 100초 전에서 한 번만 부르고 만 게 아니라 자기 콘서트의 레파토리로 넣어서 공연 때마다 어이의 닭다리 춤과 노래, 격렬한 헤드뱅잉을 관객에게 선보여 환호를 받고 있다. 윤도현, 크라잉넛 이상면에 이어 락커 골수 팝저씨 한 명 추가.
2014년 7월. 13살 연하 일본인 여자친구와 2014년 안에 결혼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같은 소식만 몇년 째 듣고 있다 이 정도 되면 양 치는 어르신 해당 기사.
2014년 11월 8일, 교제 중이던 일본인 여자친구와 드디어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어서와 유부는 처음이지? 관련 기사.
2015년 1월 17일 불후의 명곡에 나왔을 때 마침 함께 출연한 EXID와 의상코드가 겹친 덕분에 6번째 멤버드립이 성행했다.경호 언니가 제일 예쁘다 최고실력을 자랑하는 걸그룹 리드보컬
당시의 모습. 40대 중반의 나이에 20대 초중후반의 여자 후배들 사이에서도 위화감 없이 섞이는 위엄을 보여줬다(...) 아 진짜 못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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