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텃밭 - 이양덕 본문
텃밭
이양덕
시골 밥상은 텃밭에서 얻는 푸성귀로 국 끓이고 쌈을 먹고 파 숙회와 알싸한 갓김치도 담그는데, 그만한 찬거리를 얻기 위해선 손이 닳도록 일구고 가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남편과 자식들을 배불리고 건강을 지키고자 이루어낸 어머니의 터전이었다. 응달에 쌓였던 눈이 풀려서 땅 속으로 스며들면 참새 떼가 애벌레를 쪼아먹는 땅을 곡갱이로 갈아엎고 두엄을 뿌려서 비옥하게 일구어 각종 씨앗을 뿌리고 가뭄이 이어지면 물동이를 이고와 타죽지 않도록 물을 주었다.
일제 강점기와 육이오 동란을 지나면서 배고픈 설움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자식들을 잘 키우고 먹이려고 악착스럽게 끼니 때마다 초록을 수북하게 담아왔다. 이른 아침에 이슬 적시며 밭이랑에 엎드린 어머니를 보면서 알 수 있었다. 나는 몸이 굼실거리면 고양이처럼 감나무에 올라 공중에 몸을 날려서 텃받에 쿵 떨어지면 진달래 흐드러진 앞 산으로 달아났다. 봄날엔 암탉이 알에서 갓 깨어난 병아리를 몰고와서 한바탕 휘젓고 가는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돌담에 기댄 감나무 한 그루가 경기병처럼 서서 휘리릭 휘파람을 불고, 바람이 상추잎에 감꽃을 떨구면 나비인 줄 알고 살금살금 손을 내밀기도 했다
외할머니께선 한나절을 텃밭에 나가서 어린 손주를 돌보듯 콧등으로 흘러내리는 비지땀을 훔치며, 채소들로 빼곡히 들어차면 안 먹어도 배부르다시며 허리를 펴고 해죽해죽 웃었다. 유년시절, 육수에 된장을 풀어 쌀 한보시기 불려서 아욱죽을 끓여주시던 어머니의 손맛은 객지로 나온 후 결혼하고 아들까지 결혼을 시켰지만 내 손으로 그 아욱죽 맛을 흉내 낼 수 없어 안타까움이 더 했다. 가난했지만 가족이 빙 둘러앉아서 얼마나 정겹고 따듯한 밥상이었던가, 지금도 잔잔한 그리움이 일렁거리며 열두 평 남짓한 텃밭이었으나 손을 뻗으면 금세 반찬거리를 내줄 것만 같다.
요즘 텃밭에 대한 관심이 활활 타오른다. 선거철이면 텃밭 표심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국민들의 시선도 빼앗길 수 밖에 없는데 민초들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화가치밀 정도다. 정치인들의 탐욕에 힙쓸려서 각기 감정을 분출하고 가족과 친구 사이에 금이 가기 일쑤다.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괴이한 현상이다. 통합을 외치는 자 들 이 표밭을 다진다는 건 무슨 망발인가, 곡갱이, 호밋자루 한 번 들지 않고 우루르 몰려왔다 떠나버리지 않았던가?
보수, 진보, 두 진영으로 나누고 국토를 톱으로 소나무 자르듯 토막 내놓고 선량한 민심을 충동질하고 혐오심을 불러와 마음을 황폐화 시키고 있다. 텃밭의 본질에서 얼마나 동 떨어졌으며 위험한 행위인가, 국민은 준엄하게 표로 말해야할 것이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란 옛 말이 귀를 맴돈다.
모름지기 텃밭에서 수확률을 높이려면 농심을 쏟아부어야 하고 아무리 다급해도 땅심을 되살리기 위해선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발로 밟고 다니는 땅의 마음을 얻는 것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비 떼가 날아드는 오월이면 부추는 흰 별초롱을 매달고 노란 갓 꽃이 피어서 나비인지 꽃인지 그림책이 펼쳐있던 그곳, 세월은 흘러서 텃밭은 잃었으나 아지랑이가 피는 봄이면 먼 그리움도 덩달아 나비를 좇아서 달음박질하고 어머니의 구수한 손맛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