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나의 시 쓰기 - 이양덕 본문
나의 시 쓰기 - 이양덕
자화상, 질문이 날 여기에 세웠다
나의 시 쓰는 시간은 혼자서 묻고 생각하고 답변하는 시간이다.
처음 시에 입문했을 때 단순하게 감성을 앞세워 아름다운 문장을 꾸미기 위해서 이리저리 헤매며 애쓰다가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거리감을 실감할 때도 있었으나 창작에 대한 이론보다 습작에 몰두하면서 쓰고 또 쓰다보니 시가 무엇인가를 알아가면서 무엇보다도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는 게 긴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창공에 홀로 나는 새와 보일 듯 보일 듯 피어있는 작은 풀꽃을 대하며 이것들이 신비로운 우주의 질서와 맛물려 있음에 살아 있는 생명을 더깊이 사유하고 파노라마 같았던 그런 순간들을 비망록에 기록하듯 일상을 점검하며 시를 써 왔으며 또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그리움에 빠져서 시를 쓰기도 했다. 그렇다. 장미나 백합 산나리꽃 등, 강언덕에서 비 맞는 망초꽃, 천변에 날아와 무심코 앉아 있는 쇠백로의 외로운 자태도 새로운 시각에서 관찰하게 된 것은 시적 발견의 커다란 기쁨이었다.
그렇다고 시론과 충돌하면서 감성이 이끄는대로 무작정 쓴다고 시가 되는 건 아니었다. 언제나 첫번째 고민은 시제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라고 누차 들어왔지만 내게는 시를 쓰는데 일종의 강박관념처럼 시제가 커다란 중압감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제가 정리되어도 시의 순서는 정해진 플로블럼이어서 머리 속이 하얗게 비워질 때까지 쥐어짜며 사유의 폭을 넓혀가며 나를 초월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진정한 시 쓰기의 자세인가를 생각한 적이 많았다. 아마도 쓰는 시와 써지는 시의 간극에 나를 들여놓지 못 했던 같다.
물론 시심詩心이 발화할 때 온갖 관심이나 방향성을 멈춰놓고 시적 방향으로 나를 채찍질하듯 무한 반복 독려하기도 하지만 또한 시는 열정만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을 가다듬고 감성을 억누르며, 먼 수평선을 바라보듯이 담담하게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고 냉철한 자세를 견지하기도 하지만 조금만 소흘해도 앞서오는 감정은 좋게 생각해서 시 쓰기의 수행의 과정으로 자위하기도 한다. 어깨에 힘 빼고 내리긋는 서법가의 필획처럼 진솔한 언어로 마음에 비친 풍경을 그려내는 시가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풀잎에 맺힌 이슬과 꽃 한 송이, 그것이 갖는 소소함과 진정성을 목도하듯이 내 시를 읽어주는 단 한 사람의 마음 속까지 스며들지 못한 시는 죽은 시가 되고 말 것이기에 하얀 종이 위에 미화하지 않고 편견 없이 보이는 그대로 맑은 물이 스미듯이 쓰고 싶은 것이다.
스며드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참을 수 없는 고통과 황홀은 한 뿌리에서 시작됐다.
내 말이 스미어
너의 심장이 뛴다면,
해당화가 피고 새가 날아들고
꽃이 진 사과나무에서 빨갛게 익은 사과와
생크림 케이크가 담긴 흰 접시에 생각이 꽂힌 브런치 시간에
무엇을 위해서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꽃은 잠 못 들어 초승달을 저어가고,
봄여름 가을 겨울은
현기증에도 눈부신 해 아래서 느낌표를 찍고 있었다
맑은 이슬은 고요히 하루를 열고
소리없는 바람은 등피 속에 잠들었으며
두통을 않는 정수리엔 샛노란 빛살이 쏟아졌다
하얀 마음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해처럼 웃으면서 섞일 수 있을 테니,
발자국을 좇던 밤바다가 흔들리고
소라는 잠들었으며
흰 등대를 향해 달리던 물꽃이 부서지고 흩어질 때
거친파도를 헤치고 살아온 흰수염 고래여!
노래하며 꿈꾸던 너를 향해 뛰었지,
스며들기 위해서,
-졸시『스며들다』 전문
나는 환자 대열에 끼여 살아간 지 오래되었다. 협심증과 신경통증으로 매일 약을 복용하며 스텔스 오미크론 kf94에 감염되었을 때는 시를 쓰고 싶은 욕구가 강해 질수록 무기력 해지고 빈 껍데기만 남은 듯 허탈할 때도 많은 와중에서도 무엇에 씌운 듯 가슴에 이는 게 있어 그것이 시로 뒤바뀌고 나면 고통이 따르고 며칠을 앓으면서 나만의 존재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어선지 시 쓰기를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쉬임 없이 나를 찾아준 시가 고마운 것이다. 어쩌면 시 쓰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견디기 어려운 통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위치는 중요치 않아
괜찮아 눈빛을 끌어당기지 못해도
모서리에 서서 사랑이 올거라고 얼굴 붉혔다.
난, 동적이야
홀딱 반해서 오도 가도 못 하도록 훔치고 말겠어
나만의 빛깔
나만의 향기
나만의 문체로 나를 쓰고 싶었다
무겁게 짓눌렀던 매일 매일이 떠나가고
척박한 땅 위에, 눈부심이 줄다음질 치면
아무도 모르게 일기장 속에 접어놓은 슬픈 그리움을 파란 하늘로 날려보낼 거야
빗 속을 걷는 허무한 표정과 독백이
거기에 닿지 못하고 먼지처럼 흩어진 자리에서
사위四圍를 에워싼 안개를 말아 올리고
꾹 닫아걸었던 꽃문을 활짝 열었다.
어젯밤 꿈속에 두고 온 사랑은 이별이 아니었음을
부풀은 마디마다 핏빛을 양각해 놓은
가엾은 꽃 이야기를
울지 말고 들려줘요. 달콤한 기억뿐인 사랑이니까,
-졸시 『패랭이꽃』전문
나는 이 땅의 시인인가 자문해 본다. 시인의 소양을 모두 갖추고 있는지 묻는다면 단언코 동의할 수 없다. 시를 쓰기 위해서 시에 전부를 쏟아붓고 미쳐야 한다지만 머리는 차가워졌고 가슴은 뜨겁지 않다. 철탑에 올라 외치는 목소리에 귀를 활짝 열어놓고 섬세한 촉감과 뜨거운 심장으로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가까이 다가서서 메마른 가슴에 시에 대한 사랑으로 더욱 충만해 지기를 소망하는 것이 나의 현주소다.
짧을 수록 어렵다.
나로서 무한 살아가게 하지만
늪에 빠지게 되면 자멸할 수 있다.
12시간의 노동을 잘 견뎌내기
창문을 활짝열고 해 뜨는 아침 맞기
사방이 우겨쌓인 방에서 세상 밖으로 나올 때마다
강북으로 가시겠어요, 강남으로 가시겠어요.
와인의 시간은 즐거웠나요.
치맥 시간엔 휴지를 칭칭감고 차차차를 부르시더군요
밤하늘에 별이 해안선에서 불안에 떨고 있군요
본적, 가족관계, 학력증명서를 요구할 땐
공황장애를 앓았다
실어증을 앓는 입술에 빨간 머큐롬을 바르고
흰 석회를 뒤집어 쓴 뇌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왜 사느냐고 물으면 혼란스러운 난,
돋보이도록 높은 철탑 위에 올랐다.
문득 브람스의 자장가를 듣고 싶다.
고독하고 보고싶고 막막하고 서러웠다.
볼을 비비다가 뱅글뱅글 돌며 호기심이 발동한 고양이
혼자서도 즐겁고 행복한 듯
대답하지 않았지만 눈빛이 그랬다
졸다가 별안간 눈을 뜨고 나를 확인했다.
나도 행복을 위해 직선을 달렸다
발목이 휘어지지도 꺾이지도 않았다
대나무 꼭대기엔 나팔꽃이 피었고, 토마토는 붉게 익었다
질문이 날 여기에 세웠다.
-졸시 『질문이 날 여기에 세웠다』 전문
돌이켜보면 나의 문청시절은 섹스피어 톨스토이 도스토에프스키 빅토르 위고 등, 대문호들의 작품을 통해서 문학을 입문하게 되었고 또한 조지훈 이육사 윤동주 신동엽 등 시인들의 시를 읽고 감명을 받아 눈물도 많이 흘렸으며 하이든의 천지창조나 모짜르트의 대관식 미사 헨델의 메시아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등등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합창단과 찬양대원으로 무대에 서서 노래 부르던 순간들은 시를 낭송하듯이 빛났고 행복했다. 오랫동안 정서적으로 함양涵養된 시간들이 시를 쓰는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시 쓰기의 어려움은 등단 이후에도 한결 같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내 시에 등장하는 해 달 별 산 바다 강 프라타나스 자두나무 앵무새 혹등고래며 어여쁘고 향기로운 꽃과 나비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람들 모두 고마울 뿐이다. 한 편의 시에 담는 기쁨이나 희망 절망과 사랑은 삶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같은 형상일 것이기에 오늘도 스스로 질문하고 또 질문하며 외롭고 막막해도 노래하고 사랑하며 나는 시 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월간 [시문학] 2023년 2월호-
이양덕 : 전남 영광출생 -월간 시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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