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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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식사 /이만섭
여름 한낮, 점심을 기다리다 듣는 빗소리
후드득 후드득 무더위를 씻는 장대비에
식당 앞 화살나무가 소란스럽다
빗소리는 분명 빗소리인데 나무가 식사를 한다
그러니까 나무는 제 그림자를 깔고 앉아
머금머금 입을 여닫으며
아까부터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람이 거칠게 우듬지를 흔들고 지나갈 때도
입의 언저리만큼은 매무새를 흩트리지 않고
비의 식단을 가다듬었던 것이다
그간 건기에 시달린 몸의 갈증 같은 것은
땅속의 뿌리가 이내 해결해 줄 진데도
둥근 이파리를 저어새의 부리처럼 납작하게 펴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한바탕 소나기가 멎고 창밖이 말짱해지자
나무는 식사를 맛나게 끝낸 듯
포만감에 젖은 푸른 잎을 함초롬히 반짝인다
나무의 식사를 일없이 지켜보다가
그만 내가 늦은 식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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