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때죽나무 흰 꽃 아래서 본문
때죽나무 흰 꽃 아래서
이만섭
저 앙증스런 꽃등을 가슴에 달아
나는 꿈길을 걷네
종소리도 환한 허공은
천 마리의 단정학이 날개를 파닥거리고
만 개의 별꽃이 쏟아지는데
꿈길을 걷는 내내
떨림으로 다가오는 꽃의 눈부심
분분한 현란에 에워싸여
환희의 통증으로 눈빛 뗄 줄 모르는
뭉클한 가슴
어느결에 그리움을 마중하고 있네
퇴촌
이만섭
햇빛 오달지게 쨍쨍거리는 날
이정비 하나 없는 풍경의 뒷길을 간다
물버들 아른거리며 마중 나온
경안천, 너머 애초롬히 누운 텃밭 사이로
정지문 속 훤히 물러앉은 옛집들
마당 비킨 측백나무 울타리
푸른 별방울 열매 달아놓고
강바람에 달그랑달그랑 이는 풍경소리
분가루 같은 햇살 곱게 깃들어 있어도
매양 뒤꼍으로 쌓이는 그늘
물갈대 헤치고 마실 나온 비오리 새끼들
채마밭에 감꽃 같은 흰 똥 뉘어놓고
물가로 헤엄처 달아나면
어느덧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드는 강마을
버찌를 따다가 / 이만섭
강둑길에서 버찌를 딴다
두 손 검붉게 물들어 놓고
입술도 함께 물든다
나무그늘 아래로 번지는 쌉싸래한 맛
꽃이 만발할 때도 물든 적 없었거니
봄을 보내고 돌아서서
손도 입술도 검붉게 물든다
하늘은 어느 때 바라보는 것일까
이만섭
슬픔에 겨워 서걱이는 마음
가슴에 눈물이 고일 때
고개 들어 바라보는 게 하늘일까
산바람 비켜간 저녁
어둠을 기다려
그리운 이라도 그려보듯
별자리 헤이는 게 또한 하늘일까
일 없이도 하늘을 바라보지 않았던가
그럴 때도 무심했던 하늘
창문 밖 하늘이건만
마음에 드리운 어둑한 그림자에 가려
훤히 트여 있어도 보지 못하는 하늘일 때
진정 하늘은 무엇이었던가
무심했다는 말을 감추지 말라
푸른 마음일 때 푸른 빛이라고 말하라
회색 마음일 때 회색 빛이라고 말하라
하늘에는 그것 뿐,
다른 마음이 아니라면
하늘을 바라보는 때가 따로 있을까
詩를 위한 아포리즘
이만섭
이 아침
당신이 기침해 오면
밤사이 당신의 폐부에 고인 언어를
나는 귀로 받아 씁니다
마악 아침 이슬을 꿰어놓은 풀잎처럼
아침을 연 눈부신 언어가
햇살 아래 반짝입니다
당신이 깨운 신생의 아침이
내 삶의 기쁨입니다.
'※{이만섭시인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자꽃 핀 밤 (0) | 2009.06.13 |
---|---|
어떤 적요 (0) | 2009.06.11 |
쓸쓸한 산책 (0) | 2009.06.06 |
[스크랩] 유월을 열며 (0) | 2009.06.03 |
경춘선 客說 (0) | 2009.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