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가을산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가을산

이양덕 2009. 9. 16. 08:52

 

 

  

가을산 /이만섭

 

 

 

푸른 날들이 깊어지면

수목은 등걸에 이끼를 피워내고

이파리마다 紋章을 색인한다

추억이란 반드시 한곳으로 모이는 거라고,

그리하여 더욱 투명해진 그리움으로

가슴에도 산 하나 우뚝 세운다

 

그대, 꽃이 진다고 서러워하던 때가 있었던가.

뒤따라 나선 푸름도 어느덧

골짜기마다 산그늘 비켜 세우고

저리도 숨죽여 메말라가는데

다시 꽃 때를 찾아왔구나,

 

그대와 나의 거리가

혹여 붕새의 날갯짓만이 헤아린다 해도

추억 저편의 향기를 어찌 무심히 지나치리,

지느러미 같던 등뼈는 굳어갈지라도

가슴에 들끓던 열망의 아우성은

탁본처럼 종이의 배면을 물들고

유폐된 옛사랑의 오솔길을 열고 오느니

 

그대와 내가 간직한 그리움마저

먼산으로 머물 수 있겠는가.

 

 

*이미지 : 유영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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