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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새 울음을 받아쓴 적이 있다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휘파람새 울음을 받아쓴 적이 있다

이양덕 2010. 4. 3. 14:06

휘파람새

 

휘파람새 울음을 받아쓴 적이 있다/ 이만섭

 

 

 

화사 허물 벗고 떠난 유년의 밭 언덕

찔레나무 꼭두난간에 웅크려 울던 휘파람새

명치끝에 울혈이라도 고인 듯 목젖 굴리며

허공 드높이 토해내던 울음소리 아직도 쟁쟁하다

사위는 저녁놀 짙게 배어드는데

새는 한사코 우는 일에만 열중이었다

그 새소리 시방 나는 울음이라고 말하는가,

울음이 슬픔의 방식일 수 없듯이,

수숫대 베어낸 비탈밭 아니어도 날갯짓 한바탕이면

날아 울 수 있는 곳은 많고도 많을진대 

어쩌면 그곳은 새가 간직한 그리움을

이무럽게 내려놓고 싶은 마음의 뒤란이었는지 모른다

찔레꽃 하얗게 피워낸 추억자리에 돌아와

목젖이 터지도록 울어대는 간절한 발성법은

그리움에 띄우던 주파수는 아니었을까,

떨기진 나뭇가지 어디쯤에 빈 둥지 남아 있을까,

더듬더듬 찾아가는 애틋한 귀환은

한때 멀미나도록 흐드러진 찔레향이며

이랑마다 나풀거리던 푸른 수숫대만큼이나

울창했던 나뭇가지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새는 허공에 새겨진 무수한 발자국들을

탐색에 탐색을 거듭하며 찾아왔을 것이다

더는 남아있지 않고 지워져버린 먼 자취들,

그립디그리워 아득하게 깊어진 이녁의 옹송그린 가슴으로

마른 열매 따내듯 토해내는

저물녘의 한때가 마냥 정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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