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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의 발달사(發達史) - 이만섭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그늘의 발달사(發達史) - 이만섭

이양덕 2011. 10. 19. 07:03

 

그늘의 발달사(發達史)

 

 

이만섭

 

 

광나무의 한낮,

 

밑동으로 어슬어슬 그늘이 번진다 

 

빛의 폐활량이 쏟아놓은 거머무트름한 공백이 

 

처음에는 겅성드뭇하더니

 

어느 사이 편형동물이 알을 슬어놓은 듯 편편하다

 

빛은 매번 몸을 팽창하여 그늘을 쉼표처럼 찍어놓지만

 

공허를 부풀려  스스로 자라는 그늘,

 

어둠이 닥친다거나 밤이 들면 자취 없다가도

 

일광의 등살에 성장판을 열어 슬몃슬몃 몸집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나 생성의 내력이 불분명한 터에

 

빛으로부터 사생아 취급을 당하기 일쑤여서

 

어떤 소유권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빛은 언젠가 화해라도 하듯 다가서려 하겠지만 

 

저 푸석한 자리는 빛이 다다를 수 없는 피안인지도 모른다

 

마침내 그늘이 빛을 거느리고 자세를 가다듬어

 

한 자락 결가부좌로 나지막이 들어앉는다

 

정오의 안쪽이 짙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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