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의자의 형식 - 이만섭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의자의 형식 - 이만섭

이양덕 2011. 12. 19. 11:58

의자의 형식

 

                          이만섭

 

  

 

의자가 밀랍인형처럼 앉아 있다

키를 낮춰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늘 그렇듯이 그것은 신분의 증표와도 같다

혼자 있을 때는 주인이지만

한 번도 주인인 적 없어 앉아 있어도 공손하다

누군가 닫힌 문쪽으로 방을 물을 때

방 있습니까? 라고 말한다거나

또는 방에 있습니까? 하고 일컫는 경우는

모두 그 속을 묻는 거지만

의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

방에 들고서야 의자가 있는 것이다

보이는 그대로 의자를 알아본 자는 격식을 생략하고

다짜고짜 궁둥이를 밀어 넣는다

그처럼 조우하는 관계가 편리하다

생각할 것이라면 그가 차례를 지켰는가를

자문자답하는 정도일 것이다

하찮을지라도 그것이 의자에 대한 예의다

그제야 등 뒤를 쓰다듬는 모성처럼

굳어 있던 표정이 펴지고

제 이름을 찾은 의자가 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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