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강대나무 눈꽃을 보며 ㅡ 이만섭 본문
강대나무 눈꽃을 보며
이만섭
꽃은 와서 피었다
까맣게 지워진 길을 좇던 곳으로
새로운 길을 내며 적운층을 날아온 칼새가
제 깃을 뽑아 둥지를 틀듯이
유폐의 자리에 흰 꽃차례를 짓고
온기 어린 손길이 닿은 적막이 아늑하다
겨울나무에 핀 꽃들 同色인 줄 알지만
기다림조차 소멸한 자리에
살을 비비며 피워낸 꽃은 더욱 희고 곱다
물관이 고갈하여 말라죽은 처연한 생을
차마 가장 아름답게 문상한다
차운 가슴에 서린 한을 닦아내듯
봄을 기다릴 수 없는 나무의 영혼에 대한
심심한 위로인지도 모른다
저 척박한 주검의 제단에 예를 갖추어
꽃을 바치는 고결한 자태에
고갤 숙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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