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이향아『꽃들은 진저리를 친다』읽기 /이만섭 본문
이향아『꽃들은 진저리를 친다』읽기 /이만섭
노트에 시인의 시를 필사하는 아침. 창은 왜 이리도 환한가, 거침없이 쏟아지는 햇살이 눈이 부셔 가슴이 설렌다. 먼동 어디쯤에 봄이 오고 있다는 증표인가, 빗살은 등 뒤에 꽂혀도 그늘자리까지 밝히고 든다. 이런 분위기를 문밖의 나무들에게 가서 귀띔해주고 싶다. 아니 나무들은 이미 햇빛과 교감하며 뿌리 어디쯤에서 물관을 트고 서서히 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시를 쓴다’라는 말은 아무래도 문맥의 오류인 것 같다. ‘시는 낳는다’라고 말해야 좋을 것 같다. ‘꽃이 핀다’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된 표기 같다. 이 또한 ‘꽃이 태어난다’라고 말해야 옳을 것 같다. 이향아 시인의 시에서는 이런 은유적인 의미가 각별하다. 꽃이라는 대상에서 보이는 연대감은 화자의 존재의식과 동일선상에 놓고 있는데 이것을 달리 말하면 생명의식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꽃으로부터 끊임없이 친화적인 감정을 얻는다. 때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꽃의 모양과 빛깔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꽃은 언제나 한 모습일진데, ‘기쁨’이나 ‘행복’ ‘눈물’ 등등 꽃의 안팎을 뒤척이며 갖가지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꽃은 어느 대상과 접목을 해도 새롭지 않을 때가 없다. 따라서 꽃이 지닌 역할 가운데 아름다움밖에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존재를 지각하게 하는 힘이 아닌가 싶다.
꽃들은 밤으로 핀다
낮에 광란하던 것들 제풀에 시들고
모두들 죽고 없는 밤으로 눈을 뜬다
어둠이 목화처럼 깔리고 나면
유령들 푸른 눈이 슬프게 빛나는
섬광보다 짧은 순간을 골라서
꽃들은 밤으로 핀다
세상 일 모두 그게 그거라지만
아니야, 아니야 이것은 절대야
그 날 높아진 호수의 물길을 재우고
비단 보료를 조용히 펴서
아니야, 아니야 이것은 내 지닌 최후야
큰 소리 치지 않고
아주 낮게
꽃들은 진저리를 친다.
목숨을 모아도
피에 젖지 않는
한 접시 절정의
불을 밝힌다.
-이향아「꽃들은 진저리를 친다 」전문
이 시는 꽃의 탄생을 면밀하게 들여다 보게 한다. 꽃은 어디서 오는가, 또는 꽃은 왜 피는가, 라는 생각은 아름다움에 대한 실례다. 그런 걷도는 접근이 아니라 꽃의 탄생이 적요로부터 체현하고 있음을 언술하고 있다. 꽃을 대할 때 꽃이 지닌 아름다움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신생이라는 산고의 과정을 통해서 얻는다 하겠는데 ‘섬광보다도 짧은 순간을 골라서’ 라든지, ‘목숨을 모아도 피에 젖지 않는’ 등, 예의 인용된 시구에서 꽃은 명백하게 시인에게 지각적으로 사용된다. 꽃의 이미지는 곧 육탈한 자아와 같은 고결한 획득물이다. 꽃이란 꽃나무에서 피어났어도 꽃나무의 것이 아니듯 화자의 심경은 한층 비장해져`높아진 호수의 물길을 재우고 비단 보료를 조용히 펴는’ 것만으로도 뜻에 닿을 수 없어 ‘ 큰 소리 치지 않고 아주 낮게’ 라는 순명의식으로 잠자코 존재감을 보여준다. 그렇다. 꽃이란 꽃은 하나같이 은폐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화음 같은 아름다운 형상과 교감하는 시인의 꽃 사용법은 다른 시에서도 웅숭깊게 드러난다.
꽃차를 마시다니
목숨의 한가운데 정수리를 따서
연꽃 송이 우리어 향내에 갇힌다
-중략-
얼린 꽃 녹여서 향이나 우려
아무렇지 않게
꽃차를 마시다니,
눈 감으면 원도 없지, 무얼 또 바라랴만
나는 또 죄 하나를 쌓고 있는가
-이향아「꽃차를 마시며」 부분
꽃차를 대하는 마음이 무척 조심스럽다. 흡사 경전을 펴놓은 듯 마음을 가지런히 여미는 게 보인다. 차라는 것은 가벼이 마시되 범절을 지키며 귀한 연연을 대면하듯 그 맑은 뜻을 빌려 마시는 것이다. 더군다나 꽃차이기에, 꽃으로 피워낸 그 꽃이 차로 거듭 났으니 한 모금
차인들 꽃에 대해 미안하고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일찍이 다성 초의선사가 정성스럽게 빚은 차를 보내준 답례품으로 완당은 茗禪이란 글귀를 적어 보내는데 차를 통해 선에 들 수 있음을 피력한 이 말은 지금도 널리 회자되지만, 여기서도 생명의 존엄성이 꽃차에 닿을 수 있음은 눈에 보이는 차의 형상이 단순한 꽃차가 아니라 영혼의 생명체로 거듭나게 하는 시인의 이미지화 된 시적 변용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동지 무렵인가, 꽃을 사러 화원에 들렸을 때 꽃망울을 터트린 매화 분재를 보고 적잖이 놀란 적이 있었다. 겨울이 시작되는 무렵인데 이미 매화가 피었으니 이른 개화가 궁금해서 주인에게 물었더니 웃기만 할 뿐 선뜻 답을 주지 않아 꽃을 사면서 채근을 했더니 냉장고 속에 사나흘 넣어 두었다가 꺼내놓으면 꽃이 마술처럼 핀다는 것이었다. 매화의 고결함이 추위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익히 아는 일이지만 나무도 생명인 이상 인위적인 뜻으로 추위를 감내해야 하는 데는 자연적인 것과는 별개의 뜻이 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꽃은 아름답다, 이 말을 전제로, 더 아름다운 꽃은 대체로 시련을 통해 피는 게 아닌가 싶었다. 지난겨울이 유난히 추웠기에 올봄에 피어나는 꽃들은 모르긴 해도 더 화사할 것만 같다. 꽃나무들, 겨울을 나면서 냉가슴 조이며 봄꽃을 어떻게 피울까, 꿈꾸며 고민했을 터이기에 겨울을 난 꽃나무가 이 봄에 꽃을 피운다는 것을 생각하면 봄을 맞는 마음이 기쁨에 앞서 한편은 숙연해진다.
시에 있어서 상상력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 진폭을 제한적으로 갖지 않고 자유롭게 넓이를 재는 것이기에 그것이 시각적으로 규정하기보다는 마음에 의존하는 데 있다 할 것이다. 곧 시인이 피워내는 꽃은 이처럼 내면적으로는 동질성 내지는 연대의식으로 놓여 있다. 생명의 탄생에 있어서 수반되는 고통을 꽃이라는 아름다움을 통해서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거듭 말해서 꽃은 여기서 존재를 지각하는 힘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시의 첫 행에서 ‘꽃들은 밤으로 핀다’고 서술한 탄생의 시간은 정지된 우주의 적막으로부터 나오고, 그 묘묘한 고요의 틈새에서 얻는 게 진정 꽃인 것이다. 따라서 꽃은 ‘밤으로 핀다’ 라는 문장이 ‘밤으로 눈을 뜬다’ 라는 고양된 환유법으로 전환하여 꽃의 탄생을 존재와 상응관계로 놓고 있는 것이 이 시가 지닌 울림의 맛이라고 하겠다. 꽃이 피기 전 어둠조차도 꽃을 위한 어둠이겠으니 아름다움을 위해 진저리치는 자리를 묵묵히 우주의 뜻 그대로 경건하게 바라보는 게 관찰자의 몫일 것이다.
20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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