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비와 유리창과 나와 - 이만섭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비와 유리창과 나와 - 이만섭

이양덕 2013. 5. 3. 09:52

 

 

 

 

 

 

비와 유리창과 나와

  

      이만섭

 

 

 

 

비를 위해 유리창을 위해

나를 위해 밤의 전등을 끈다

불빛 없이도 달려오는 저 비의 맨발들

유리창 앞에 머뭇대거나, 그도 저도 못해 돌아가거나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갈마든다

벌판을 지나 강을 건너 담장을 넘어

지상의 모든 경계를 허물고 달려왔으나

더는 다가서지 못하고 처마 밑에서 웅성거린다

저 소리 가까이 귀 기울리니

지금 시작하는 괴로움이 있는가 하면

아직 끝나지 않은 슬픔이 있다

창은 늘 그렇듯이 비의 사연을 끌어다가

슬그머니 기억자리에 밀쳐놓지만

돌보는 이 없어 외롭기만 한데

내가 감당하는 그리움이란 것도

고작 창문 밖으로 팔 내밀어

손바닥에 빗방울을 올려보는 일이니

이 느슨해진 감정을 어쩐다

저 한결같은 유리창에도 못 미쳐

맨발의 비를 바라보는 경계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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