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비와 유리창과 나와 - 이만섭 본문
비와 유리창과 나와
이만섭
비를 위해 유리창을 위해
나를 위해 밤의 전등을 끈다
불빛 없이도 달려오는 저 비의 맨발들
유리창 앞에 머뭇대거나, 그도 저도 못해 돌아가거나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갈마든다
벌판을 지나 강을 건너 담장을 넘어
지상의 모든 경계를 허물고 달려왔으나
더는 다가서지 못하고 처마 밑에서 웅성거린다
저 소리 가까이 귀 기울리니
지금 시작하는 괴로움이 있는가 하면
아직 끝나지 않은 슬픔이 있다
창은 늘 그렇듯이 비의 사연을 끌어다가
슬그머니 기억자리에 밀쳐놓지만
돌보는 이 없어 외롭기만 한데
내가 감당하는 그리움이란 것도
고작 창문 밖으로 팔 내밀어
손바닥에 빗방울을 올려보는 일이니
이 느슨해진 감정을 어쩐다
저 한결같은 유리창에도 못 미쳐
맨발의 비를 바라보는 경계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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