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가을의 起源 ㅡ 이만섭 본문
가을의 起源 /이만섭
신갈나무 겅성드뭇해진 잎을 헤치고 숲길을 내려온 산꿩이 저수지의 물낯에 붉은 볏을 비춰보는데, 등 뒤를 쫓아온 산이 가슴판에 아홉 이랑으로 솟아올랐다
산비알이 지어놓은 찔레 열매 붉었는지 살펴보려는 것인데 산그림자가 지어놓은 구월의 등성이 시차를 좁힐 겨를도 없이 마른 강아지풀 흔들리듯 나부낀다.
저것은 어디서 오는 쓸쓸인가, 멧부리는 멧부리대로 물결은 물결대로 하릴없이 바람을 얻어 나지막해진 풍경을 빠져나오려 꽁무니를 들썩인다.
산이 숲을 벗을 때 식솔들 거느리고 숲에 드는 나무들, 피차 적소에 이른 듯, 그러나 산은 나무 뒤꼍에서 가부좌를 틀었는데 나무는 굽은 등으로 뒤적뒤적 비탈을 궁노루처럼 오르내린다 설핏설핏 초점을 맞추는 노루 등걸의 재색 반점이며 희어진 꼬리털이 뭉뚝하다.
저 비설거지 같은 불안은 원근법도 없이 다가와 낯선 풍경으로 바뀌는데, 나무의 기생식물이 적갈색이 되어가는 신호인가, 지난여름 숲이 무성했던 까닭도, 매미가 늦게까지 목청을 높인 연유도 예견된 계절을 짐 지려는 뜻이었으리,
어느덧 골짜기는 말라 갔지만 그곳을 흘러 내를 이루고 강에 도달한 여름날은 갈대를 바람의 길손으로 키웠고, 물버들 아래 열매 지어놓은 붉은 여뀌조차 가붓가붓 건들마를 불러들이고 있다
물결의 주파수가 귀에 닿을 때마다 살갗에 찍히는 서늘한 음각들, 제풀에 겨워 발등에 떨어지는 한 장의 마른 잎 같이 비롯되는 이 쓸쓸한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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