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요리사 ㅡ 이만섭 본문
요리사 /이만섭
칼을 구부려 꽃을 만드는 매직을 보기 위해
우리는 일찌감치 당도했고 입석들도
문밖에서 번호표를 쥔 채
예의 칼이 어디서 번쩍이다가 꽃이 될 것인지
주시하는데 마술사는 촛불을 들고 나타났다
검은 망토 뒤에서 흰 비둘기가 날아오르길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예측은 빗나가고 무대의 반전에 객석이 수런거렸다
그러자 허공을 밝히던 촛불이 불꽃을 벗으며
초콜릿이 탄생하는 거였다
집중된 시선이 한순간에 수굿해지고
탁자마다 저녁이 촉촉이 흘렀다
로마에서 온 사람은 포크를 휘감은 스파게티를
혀로 천천히 벗겨 내며
우아한 도시 피렌체 속으로 깊숙이 끌고 갔다
최후까지 먹어야 음식의 승자인 것처럼
그는 가끔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창밖에서는 토악질 소리가 새어나왔다
이곳 식탁은 더는 추가가 되지 않습니다
노란 캡을 쓴 서빙원이 경고처럼 빈 접시를 거둬갔다
매직은 아직 진행 중인데 우리는
앞치마를 목에 건 채 마술사가 피워낸 꽃들을
애써 바닥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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