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이성복의「밥에 대하여」감상 / 김기택 본문
이성복의「밥에 대하여」감상 / 김기택
밥에 대하여
이성복 (1952~ )
1
어느 날 밥이 내게 말하길
—참 아저씨나 나나…
말꼬리를 흐리며 밥이 말하길
—중요한 것은 사과 껍질
찢어버린 편지
욕설과 하품, 그런 것도
아니고 정말 중요한 것은
빙벽을 오르기 전에
밥 먹어 두는 일.
밥아 , 언제 너도 배고픈 적 있었니?
2
밥으로 떡을 만든다
밥으로 술을 만든다
밥으로 과자를 만든다
밥으로 사랑을 만든다 애인은 못 만든다
밥으로 힘을 쓴다 힘쓰고 나면 피로하다
밥으로 피로를 만들고 비관주의와 아카데미즘을 만든다
밥으로 빈대와 파렴치와 방범대원과 창녀를 만든다
밥으로 천국과 유곽과 꿈과 화장실을 만든다 피로하다
피로하다 심히 피로하다
밥으로 고통을 만든다 밥으로 시를 만든다 밥으로 철새의 날개를 만든다 밥으로 오르가즘에 오른다 밥으로 양심가책에 젖는다 밥으로 푸념과 하품을 만든다 세상은 나쁜 꿈 나쁜 꿈 나쁜 밥은 나를 먹고 몹쓸 시대를 만들었다 밥은 나를 먹고 동정과 눈물과 능변을 만들었다, 그러나 밥은 희망을 만들지 못한 것이다 밥이 법이기 때문이다 밥은 국법이다 오 밥이여, 어머님 젊으실 적 얼굴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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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을 더는 견딜 수 없을 때면 입천장이 당긴다. 갓 잡은 토끼 가죽을 말릴 때처럼 누가 얼굴 피부를 아래로 팽팽하게 당기는 것 같다. 볼은 꺼지고 그 위로 창백한 솜털이 뒤덮는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읽으면 허기를 통해 밥의 진정한 위력이 느껴진다. “슈호프는 겉옷의 앞섶 호주머니에서 얼지 않게 흰 마스크에 싸놓았던 반원형의 빵 껍질을 꺼냈다. 그는 그것으로 정성스럽게 싹싹 훑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껍질에 묻어나온 죽 찌꺼기를 혀로 한 번 핥은 다음, 다시 그것으로 죽그릇을 닦았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역시 밥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느끼게 한다.
요즘은 굶는 사람이 없다지만 찬밥 먹는 사람과 더운밥 먹는 사람은 있다. 허겁지겁 때우는 밥이 있고 온갖 고명으로 장식한 밥이 있다. 밥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밥 때문에 생명을 빼앗기기도 한다. 어느 분야든 밥그릇 싸움이 가장 치열하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것도 따지고 보면 밥이었다. “밥은 희망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밥이 법이기 때문이다 밥은 국법이다”라는 말이 슬프게 다가온다.
김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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