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바람벽 ㅡ이만섭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바람벽 ㅡ이만섭

이양덕 2018. 5. 10. 07:47

 

 

바람벽

 

                   이만섭

 

 

우리가 아무도 모르게 나눈 대화는 어디로 가나,

허공에서 가뭇없이 사라지는 듯해도

너와 나 사이 주고받는 말 은연중에 비워내듯

말의 경계를 허물고 유령처럼 건너와

직립의 빨판으로 감쪽같이 거두어가는 그곳은

남루의 화석을 두른 가파른 난간

표면은 묵은 살가죽 냄새에 찌들어 고루할 테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스스로 발설하지 않는 오래된 시간의 궁륭

바람으로 살찌우고 바람으로 자란 귀가 있어

모퉁이마다 깊다란 계곡이 들어앉아

세월을 등짐 지고 건너가는 집요한 침묵의 성체,

그래서일까 수도자들은 그 길을 좇아 마음을 가다듬지만

십 년 면벽에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는 장벽과 부딪는다.

단지 귀 하나로 자신을 가두어

늙어가는 자리를 건사하는 오늘도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나눈 우리의 말을 저당 잡히며

비밀을 외면하듯 까맣게 잊고 지내는 저 거대한 귓바퀴가

바위처럼 들어앉은 이유를 깨달을 때

비로소 그곳에 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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