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사무실 - 이만섭 본문
사무실
이만섭
컨테이너 속의 흰 벽 같은
흰 벽 속의 서랍 같은
서랍 속의 육면체 같은 사무실이 있다.
인쇄된 종이뭉치를 받든 젊은 사내가
의자 앞으로 걸어온다.
안녕하십니까! 이 의자에 앉아도 괜찮겠습니까?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의자인데
종일토록 대면하는 익숙한 얼굴인데도
네모난 서류를 닮은 말투는 예의를 갖추었다.
비어 있는 의자에 이처럼 공손한 저 예의범절은 형식적일까,
사방을 둘러보면 의자보다 키 큰 책상과
책상보다 높은 위치에 물통이 놓여 있고 나머지는
흰 벽에 갇힌 질서가 엄연하다.
의자의 지시를 따르는 서류들,
가지런히 내미는 두 손이 공손하다.
책상 위에 전화벨이 팔을 끌어당긴다.
소리의 데시벨을 확인하는 보이지 않는 귀들,
습관을 사용하는 방식은 면밀한데
책상과 캐비닛을 갈마들며 팽창하는 공기는
방음벽에 갇힌 듯 굳어있다.
사물의 시간을 견디는 벽시계가 하품하는
오후 두 시의 눈꺼풀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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