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사과를 삼킨 빨강 - 이양덕 본문
사과를 삼킨 빨강
이양덕
삼킬듯 사과를 움켜쥐었다
뜨거운 뺨의 이유를 흰 바람 속에서 읽었다.
태양을 껴안고 정오를 지나
봄밤에 나비 떼가 날아온 길을 걷는
등피에 힘줄이 꿈틀꿈틀 솟구쳤다
허공에서 빛살 한가득 붙잡고, 당신을 위해
독이 든 마녀의 사과가 될 수도
액자 속에 영혼 없는 감상품이 될 수도
코끼리에게 밟혀 뭉개질 수도 없다.
달콤한 과육은 은쟁반에서 미끄러지듯
그대의 발그레한 혀를 삼키고 싶었다
생명의 신비를 산란한 빛의 파장은
수만 광년의 거리를 분절되지 않고
온몸을 활활 태워 빨강색을 사과에 입혔다
꽃들의 웃음소리가 슬픔을 지울 때
손가락은 하늘가에 해시태그 찍어놓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정경의 유화를 그렸다
포름 알갱이 범벅된 땅에 흰 눈이 내리고
타락한 욕망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세잔은 사과를 안고 왔다.
⸺월간 《시문학》 202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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