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저녁의 질료 본문
저녁의 질료/ 이만섭
순교하는 날빛 들목에
수묵색 외투를 걸친 어스름이 잠시 묵념을 올린다
뒤따라 일제히 기립하는 정령들,
모든 경계를 허물고 판화처럼 음각되어
횡렬로 번지는 검푸른 귀의,
잠시라지만, 그 사이
광합성을 꿈꾸던 담벼락의 편백나무도
일광을 쫓던 우듬지마다
날갤 접은 채 제 그늘에 갇힌다
텃새들도 거처로 돌아간 울타리 안,
농묵으로 착색된 어둠의 귀에
재넘이는 풍경처럼 낮은 소리를 흔들다가
슬금슬금 대문 밖으로 빠져나간다
이제부터는 냄새의 시간이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일도
달그락거리며 음식을 만드는 일도
일상을 간추리는 소리의 음색은 더욱 긴밀해지고,
무기질처럼 귀의하는 저녁
체내에도 어둠이 번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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