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찬밥 본문
찬밥 /이만섭
어머니는 여름이면 찬밥을 물 말아 드신다
김치도 젓가락 필요 없이 맨손으로 쭉쭉 찢어 드신다
서울 사신지 삼십 년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고향 집 살 때가 그리운지
한여름 콩밭 매고 와서 보리밥 찬물에 말아 풋고추 된장에 찍어 먹던 시절을
소꿉놀이하듯 흉내 내신다
돌이켜 보면 어릴 적 그런 날 저녁은
마당 가에 피운 메케한 모깃불 식구들 눈물샘을 자극하고
허공을 까맣게 그을리며 피어올랐지
앙금으로 내린 세월의 결례를 자분자분 추스르는 어머니
나는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갤 끄덕인다
찬밥은 꼭 그랬다
물에 말려 풀어진 밥 알갱이들이 입안에서 꼬들꼬들하게 씹히며
씁쓸해진 입맛을 잽싸게 포도당으로 바꾸어 주는데
허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일에 지친 마음마저 위로해주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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