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파란사과 본문
파란 사과
이만섭
당신은 왜 붉은 사과만 찾으시나요,
가을이라서, 정맥에 돌아온 피돌기 감출 수 없어서
그저 계절의 내력에 젖으셨나요,
사과들은 언제부터 붉었느냐고 묻고 싶어요
붉어서 가을이 되고
붉어서 과일이 되고
그래서 또옥 따버린 사과,
사과나무는 이제 사과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한 그루 또는 여러 그루의 나무일 뿐,
불빛 꺼진 과원일 뿐,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더 이상은
붉어서 따버린 사과 밭에서 무엇을 하겠어요
봄날의 분분한 사과꽃 추억도 우스워요
누군가를 그리워하던 잔잔한 생각도 접어야겠어요
사과가 익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붉은 색감에 익숙해진 당신의 마음은 거둘 수 없을 테니까요
여름날 자글거리는 태양 아래
가을이 오길 기다리던 풋풋한 소녀 같은 사과
열대야 속에서도 능금밭을 산책하다가
별밤의 상념을 가슴에 적던
푸른 꿈이 하늘에 걸린 사과를 생각해보셨나요,
다가가 만질 수 없어도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만으로도
세상의 푸름을 떠안고 있던
봉인된 꿈이 아닌
그런 사과 가슴에 지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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