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어떤 날개 본문
어떤 날개 /이만섭
새들의 전유물인 날개가
어느 저녁 무렵 내게도 돋아나기 시작했다
바람이 일고 간 듯 겨드랑이 사이가
까닭 없이 공허해지면서 보송보송 자라던 솜털은
제법 길어지더니 살갗을 덮고
견갑골 뒤에 어엿한 깃털로 자라 있었다
그곳은 햇빛이라곤 한 번도 든 적 없는데
더욱이 땅거미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알 수 없는 새로운 기별처럼 다가왔다
잠시 주저하다가 나도 이제 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13층 베란다로 나가 건너편 아파트
건물과 건물 사이에 놓인 공중의 높이를 가늠하는데
새 한 마리 난데없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어둑발 속에서도 새의 흰 깃털은
공기주머니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새가슴에 저런 대담한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새삼스러운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새는 비상하는 방법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바람의 부력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깃털의 힘으로 허공을 가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순전히 날개가 지닌 힘이었다
저편 접지할 곳을 물색하던 나의 겨드랑이가
갑자기 근질거리더니 공중을 향해
첫눈처럼 설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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