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적막사에 들다 /이만섭 본문
적막사(寂寞寺)에 들다
이만섭
푸른 정령에 이끌려가는 정처없는 가을밤
하현의 달빛이 에워놓은 숲길에 이르니
천 년 고찰 적막사가 들어앉아 있다
고요는 텅 비어 아득한데
절집은 무장무장 가까이 다가온다
세상의 쓸쓸이라고 하는 것은 바람 중에도
푸나무의 우듬지나 흔드는 정도여서
일주문에도 이르지 못하여
사찰 밖 돌층계 아래를 서성이는데
외로움인들 한갓 내 안의 가죽부대에서
발효되지 못한 생각들이 각질처럼
허옇게 돋아나는 정도일 뿐, 그뿐
절간은 그런 변죽에 사뭇 아랑곳하지 않는다
적멸궁 앞 불두화는 언제 피고 졌는지
흰 꽃봉오리 자리가 다시금 붉다
한 생이 태어나서 멸할 때까지
그 품에서 이루어지는 까닭이 오묘하다
이 깊은 저녁에 나무의 가생이에 걸린 달빛을
적막은 단지 여린 손길로 쓰다듬어주고 있을 뿐이다
무념에 분칠하며 거니는 발길에
귓속 깊이 들어앉는 달빛가루 밟히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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