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우거진 망초꽃밭을 지나며 - 이만섭 본문
우거진 망초꽃밭을 지나며
이만섭
저 산수화 한 점
벽에 걸려있지 못하고 그림 밖으로 뛰쳐나와
한마당 풍경으로 눈길을 붙든다
산도 물도 닿지 않는 언덕 한 귀에
한철 흰빛으로 와서
흰빛보다 더 희디흰 기억을 거느리고
작렬하는 햇빛과 맞서며 불망을 노래한다
무정도 하다 척박한 조우여,
제 한마당이라지만 그리움을 입은 소복처럼
저리도 무성토록 일군 꽃밭인데
꽃들의 뒤편은 어둔 생채기를 서려놓은 듯
어디서 오는 비애의 그림자인가
꽃은 그냥 피어나지 않는 것이니
꽃밭 너머 허물어진 옛집 같은 정령이 어렴풋하다
지천이 저곳까지 미쳐 있으니
길섶의 아름다움인들 내 어찌 함부로 다가갈 것인가,
뜻 굽히지 않고 꿋꿋이 견뎌낸 종순의 세월이
일시에 무너져버릴 것만 같아
섣불리 손 내밀 수 없는 기다림의 결기여,
한 마리 나비조차 되지 못한 나는
저 깊어진 현현함을 물리며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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