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과묵(寡默) /이만섭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과묵(寡默) /이만섭

이양덕 2012. 9. 9. 16:01

 

 

 

 

 

 

과묵(寡默) /이만섭

 

 

 

 

 

그의 문은 손잡이가 안쪽에만 있다

문밖에 돌부처의 귀를 세워 놓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회벽을 입힌 문의 방식일 뿐

닫힌 문은 언젠가는 열릴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위험한 것은

아무리 문설주가 돌기둥인들 소용될 때

돌쩌귀라도 입을 벌리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곳이 수도사의 거처라는 사실에

문고리를 찾던 손이 부끄러웠다

무언가에 들떠 있으면 공기 방울 같은 가벼움을 쫓아

허공에 깃털을 띄우고 싶듯이

어디론가 날려 보내지 않고 못 배기는 충동이

말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법인데

이것은 이것인데 이것이 그것일 수 있는가, 하는

지극히 이분법적 고루함에 집착할 때

입의 무게를 재는 저울은 얼마나 유익한 것인가

그럴 때 닫힌 문을 열어젖히며 그가 나온다

그와 소통할 수 있는 말들은

입의 무게를 다는 저울 같아서

돌멩이를 달 때도 먼지를 달 때도 눈금이 침착하다

그것이 문고리가 안쪽에만 달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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