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과묵(寡默) /이만섭 본문
과묵(寡默) /이만섭
그의 문은 손잡이가 안쪽에만 있다
문밖에 돌부처의 귀를 세워 놓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회벽을 입힌 문의 방식일 뿐
닫힌 문은 언젠가는 열릴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위험한 것은
아무리 문설주가 돌기둥인들 소용될 때
돌쩌귀라도 입을 벌리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곳이 수도사의 거처라는 사실에
문고리를 찾던 손이 부끄러웠다
무언가에 들떠 있으면 공기 방울 같은 가벼움을 쫓아
허공에 깃털을 띄우고 싶듯이
어디론가 날려 보내지 않고 못 배기는 충동이
말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법인데
이것은 이것인데 이것이 그것일 수 있는가, 하는
지극히 이분법적 고루함에 집착할 때
입의 무게를 재는 저울은 얼마나 유익한 것인가
그럴 때 닫힌 문을 열어젖히며 그가 나온다
그와 소통할 수 있는 말들은
입의 무게를 다는 저울 같아서
돌멩이를 달 때도 먼지를 달 때도 눈금이 침착하다
그것이 문고리가 안쪽에만 달린 이유일 것이다
'※{이만섭시인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라지꽃 ㅡ 이만섭 (0) | 2012.09.26 |
---|---|
의인법 ㅡ 이만섭 (0) | 2012.09.15 |
가을빛 ㅡ 이만섭 (0) | 2012.09.05 |
낮술 /이만섭 (0) | 2012.08.28 |
나팔꽃 당신 ㅡ 이만섭 (0) | 2012.08.25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