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서랍 ㅡ 이만섭 본문
서랍
이만섭
비밀들은 난청이다
끊임없이 귀를 막고 들어앉아 있으니
시력 따위는 아 곳에도 쓸모없다
제아무리 말랑말랑한 내용물이라도 외피는
갑각류의 등처럼 딱딱하다
그것들은 보자기에 싸여있거나
더 깊은 곳에 은밀히 감춰놓기도 하는데
맨 먼저 찾아낸 게 서랍이다
모서리 깊숙이 손 넣어
더는 사무적이 아닌 방법으로
비밀의 보편성을 증명하겠다는 듯
한 손에 이끌려 나온다
그럼에도 낮가림이 심해 손바닥처럼
손등 아래 숨어 지내는데
가까이에서도 없는 듯 한구석 차지하고 있지만
이력서를 넣어둔 곳처럼 빈듯할 때
현실은 좀 더 구체적이다
더러 쓸모를 가장한 잡동사니들이
인상착의를 놓치고 꼬깃꼬깃 구겨진 채
이치에 맞지도 않는 난청으로 맞설 때도
서랍은 비밀에 갇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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