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나무 악보 ㅡ 이만섭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나무 악보 ㅡ 이만섭

이양덕 2014. 7. 6. 11:00

 

 

 

 

 

 

 

 

나무 악보

         

 

               이만섭

 

 

    창밖 리기다소나무에서 새가 노래하고 날아갔다 이층 사무실의 네모난 유리창이 확성기 같은 귀로 새소리를 담아주더니 어느새 창은 빈 나뭇가지 사이로 비낀 저녁놀에 낯빛만 붉다 새들은 생래적으로 나무에 깃들여 노래한다 새가 노래할 때 소나무는 거기 침엽의 가지 사이에 악보를 펴놓았던 것이다 새는 그것을 보며 목청껏 노래를 부르던 것인데 창문 밖 난간을 따라 올곧게 자란 소나무의 이유가 외형상 운치나 그늘을 들이는 게 정도껏인데 자세히 보면 층층이 뻗은 가지들이 오선지처럼 가로 그어져 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새는 좀 더 자유롭게 노래하고자 날아오는 것이다 새뿐만 아니라 바람이나 빗줄기도 나무의 몸에 적힌 악보를 찾아내서 노래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G선은 바람에 나부끼고 비에 젖어 나무의 난간을 공명통으로 쓰는데 그럴 때도 새의 음량은 변함없어서 나무의 몸뚱어리가 둥글게 자라는 것도 물관의 힘을 얻은 나뭇가지가 기록해놓은 악보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인데 나무는 생이 다하는 날까지 새를 위한 악보 한 책을 엮어내고 싶은 것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