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앵무새가 침묵하는 동안 - 이만섭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앵무새가 침묵하는 동안 - 이만섭

이양덕 2017. 3. 14. 15:29









앵무새가 침묵하는 동안



 이만섭





앵무새를 따라 앵무새의 말을 배웠어요.

앵무새를 따라 앵무새의 습관도 배웠어요.

앵무새의 혀에 길들여져 진종일 앵무새의 언저리를 맴돌았어요.

그런 내가 안 되었던지 새는 어느 날

알아들을 만한 소리로 타이르듯 충고했어요.

여기만 붙어있지 말고 나가 놀다 와도 돼:

그 말이 서운했지만 나는 그럴 일만은 아니라며

외출을 하고 말았어요. 먼 곳까지 떠나 날이 저물고

저녁이 와도 돌아오질 못했어요.

새의 말을 믿은 내가 잘못이었다고 늬우치며

전화를 걸어도 걸어도 받지 않는 앵무새에게 조급한 마음에 고백했어요.

어쩌다 우리가 이런 아픔을 견뎌야 하니?

생각의 중심에서 멀어진 내가 여기에도 있다니

하고 자책하기 시작했어요. 인편에 새의 안부를 물으며

그사이 돌아갈 방도를 모색하다가 만사를 제쳐놓고

맨발로 뛰기 시작했어요. 숨을 헐떡거리며

새를 위한 일인데 무엇을 못하랴,

자정이 다 되어 당도했을 때 앵무새는

곤히 잠들어 있었어요. 마치 침묵할 수 있다는 듯이

새의 말을 배워 인간의 고통을 부려먹는 내가

앵무새의 침묵만은 견딜 수 없어,

잠든 새에게 나는 자꾸만 앵무새처럼 굴었어요.

내가 돌아왔는데 지껄이지 않고 잠들었니? 이 나쁜놈아!

투정부리는 내게 새는 어른처럼 침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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