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등 뒤에 까맣게 가려진 정체성이 몸을 흔들어 깨울 때ㅡ 이만섭 본문
등 뒤에 까맣게 가려진 정체성이 몸을 흔들어 깨울 때
이만섭
나는 어디인가, 단지 화살표만 남은 자리인가,
미혹은 질문처럼 찾아들고
그것을 좇는 일은 변함없는 진자리,
내 몸을 들여다볼 수 없는 나를 등걸이 짐지고 간다.
그런 짐이 깃털일 때가 있듯
짐을 비우고도 몸은 천근일 때가 있다.
눕혀 잠재울 때도 일으켜 세울 때도
바닥과 허공사이를 갈마들며 내게 붙어 있음에도
무심하게 잊고 지내는 나를 종종 치어다보며
등걸은 변함없는데 겨끔내기로 외면했던게 전부였으니,
오래 전 병을 얻어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을 때
진종일 숨통은 어디를 향했던지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다 면벽을 세우듯 자세를 고쳐
그간 잊고 있던 것을 무마하려 드는 감정이란 참으로 민망하여
귀엣말을 나누듯 스스로 다짐했으나
어느 사이 몸은 수면이 찾아오듯 무디어지고,
가까이 있는 사랑을 잊고 지내는 일은
불행 중에서도 가장 큰 불행이라는 생각에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물체가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소리와도 같이
마음의 수레는 구절양장의 길을 덜컹거리며 지나왔다.
내가 나의 땅을 경작하지 않았으니
묵정지 같이 자명하게 유폐된 그런 나를 이끌고
천리만리 떠나와 바람의 언덕에 다다른 것이다.
까맣게 가려진 것이 등 뒤를 유성우처럼 비킨다.
반찍반짝 폭죽을 터트리는 의식의 행렬
흙먼지 이는 어느 아침 초록 벌판에 투명한 이슬로 쟁그랑거리듯
마음의 수레에 방울소리 울리는 등 뒤의 손길에 비로소
나는 나의 노래로 화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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