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그립다는 말의 풍경을 적다 - 이만섭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그립다는 말의 풍경을 적다 - 이만섭

이양덕 2021. 1. 6. 10:56

 

 

그립다는 말의 풍경을 적다

 

 

                                    이만섭

 

 

 

기린의 긴 목이 가시나무 우둠지 사이로 솟아 초원을 바라본다.

푸른 숲으로 에워싸인 산봉우리처럼 갈기를 타고 올라 단단하게 박힌 뿔

눈매가 향한 곳은 이곳이 아닌 저곳, 천지간 너머 아득한 곳

 

바람이 불지 않아도 펄럭이는 깃발로

어떤 손짓이 속울음을 달래듯

다가오다가 멀어지고 다가오다가 멀어지며

 

초원은 해원이 되었다가 해원은 창천이 되었다가

창천은 날빛을 쏘아 올려

하늘호수의 심연에 지느러미 길게 드리우고 유영하는

푸른 물고기 떼 들여다보는 해종일

 

끝없이 이어지는 길 없는 길에 날이 저문다.

 

기린의 거망빛 눈시울이 저물녘의 평원으로 점멸등 깜박이듯 흐려지는 정경을

찻물 우려내듯 향마져 곁에 두고 싶은데

아니 보이는 것이 꽃이 되고 새가 되는 것을

이렇듯 혼자서 가질 수 있는 충만감은 

또 어디서 오는 것이냐,

 

소나무 아래서 물어보기도 하고

강가에서 중얼거려보기도 하고

마음을 비추는 겨울자락이 후림불로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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