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꽃 보러 갔다 - 이만섭 본문

※{이만섭시인서재}

꽃 보러 갔다 - 이만섭

이양덕 2021. 4. 24. 12:04

 

꽃 보러 갔다

 

                                이만섭

 

 

 

투명한 심지를 밝히는 봄빛 조명 아래

입김처럼 후! 하고 내민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얼굴은 이천 새의 눈동자로 나를 맞이한다.

 

나무는 보이지 않고 꽃들만

낯익은 듯 낯선 듯 맨몸인 채 맨살인 채

아슬아슬한 난간에서 숭어리째 색을 펼쳐놓고

가쁜 숨결로 허공을 붙들고 있었다.

 

서로 눈길 오가다가 

선물처럼 건네주는 아름다움을 받들고 있는데

이천 개의 눈동자 가운데 

잽싸게 낚아채는 눈총의 날개 부딪는 표정으로 파닥거려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인데

꽃들의 한 복판에서 싸움이 벌어진다.

 

표정은 일제히 정면을 향하고 있지만

그게 아니었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열정 같은 무기를 품에서 꺼내

잘 벼린 검의 낯처럼 번뜩하고 햇빛에 드러내 보이며

꽃잎끼리 부딪쳐 분분히 발산하는데 꽃차례는 가려지고

그래선지 나무는 밀려나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지켜내려는 안간힘에서

분사식으로 뿜어 나오는 꽃물에 흠뻑 젖고 말았다.

 

봄날이라서 한차례 다녀가는 마당인데

꽃들은 봄빛 조명받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아름다운 향연이 폭죽처럼 터지는 색의 유곽에서

늦도록 돌아갈 시간도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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