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덕의 詩 文學
碧空에 門을 달다 외5편 본문
碧空에 門을 달다
이만섭
저 광대무변한 무주공산에
바람이 들락일 수 있도록 문을 단다
천만 년 古城의 소목장이 되어
깎고 다듬어 浮彫하며
空窓이 환한 호시절로 돌아가,
어느 시절인들 창 없이 빛을 만날까만
허공의 처마에 이는 바람은
대양의 범선처럼 해류에 의지한다
집이라야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고작 바람구멍 숭숭이는 빈터이건만
명명백백한 해와 달의 영토에
문 없이 집을 나서고
문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끝내 집시의 陋屋으로 남아야만 할까,
불온한 방황의 때를 거두고
아리따운 꽃살문 박아
바람이 다녀간 흔적을 새길 수 있게
벽공에 문을 단다
문설주에 푸른 하늘 내려 독작을 하고
구름은 情人처럼 유유자적하다
국경을 넘어 망명해오는 새떼들도
문에 들어서면 자유를 얻고
비로소 벽공이 그들 세상임을 깨닫는다
玉唐紙 입힌 꽃살문 아래 서면
아득히 몌별해 있어도
그대가 속삭이는 은은한 소리를
산사의 風磬처럼 들을 수 있나니
설혹 부처꽃이 진들 무에 서러울까,
허공에도 드나드는 마음의 문이 있어
그리움의 파수꾼을 세운다
입하 /이만섭
하안거에 든 선법사
삼나무 숲 나무들이 푸른 경전을 읽는다
사문(沙門) 밖으로
심부름을 다녀오던 사미승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손을 씻다가
혼자 물장구를 친다
그도 말간 경전을 읽는다
천수 천안 관세음보살
한 움큼 떠올려 하늘 향해 받드는 손길
숲은 더욱 푸르러가고
유유상종 /이만섭
뭇 꽃들은 더불어 핀다
정원과 정원 사이
그런 경계선에 피는 것이 아니라
제 뜨락의 한가운데서
저마다 이웃 되어 피어난다
산길을 걷다가 마주친 산나리꽃
숲 속 호젓한 한구석에
홀로 피어 있는가 싶더니
햇살 깃든 자리에
꽃잎 닮은 무당벌레 한 마리
개울 건너 민가에서 날아왔던지
채마전의 푸른 이야기 들려주고 있었다
비단 꽃뿐일까,
나무가 숲이 되어
동아리 채 푸름을 짓는 일이나
골짜기를 내린 물이
강물이 되어 흐르는 일이나
새 떼들이 창공을 나는 것까지도
그 모든 것은 서로가
더불어 됨을 위해 짓는 일이다
심해선을 가다
-먼 그대에게,
이만섭
나만의 은밀한 곳에 숨겨놓은
거룻배 한 척 타고 봄바다를 건너가네
그리움으로 덧난 가슴은
오랜 세월 잊고 있던 격정을 지펴
찰방찰방 노를 저어가네
삿 끝에 이는 물결무늬
세속은 어찌하여 이렇듯
무덤 같이 스스로 깊이를 재는
세월을 버리지 못했던가
기다림이란 지지리도 무던하여
간혹 제 덫에 걸려
생의 심연으로 침전되어 간다는 것을
봄날에 지는 꽃잎이 일러주었네
아득한 난바다를 가르며
그대를 향한 융숭 깊은 삿대 소리
운명처럼 노 저어 나는 가네
시인의 관(冠)
이만섭
신의 정원에 사는 나무는
가지를 아래로 내려 자란다
신의 다스림을 받기 때문이다
그 나무 죽어가서
그루터기는 관이 될 것이니
살아, 가지는 잎을 돋아내고
꽃을 피우는 일에 힘썼을 뿐이다
나무가 잎을 돋아내고 꽃을 피우면서
그루터기를 키웠다면
시인에게 있어 또한 무엇이 다를 것인가,
무릇 시인의 관(冠)은
그의 시가 씌워주는 것이다
다시, 민들레 /이만섭
이 땅의 건기를 누가 지켜냈는가
초근목피로 생명의 수난을 견뎌내며
황톳길을 누비던 일개미와 더불어
머리에 흰 수건 동여매고
휜 허리 꼿꼿하게 세워
길가에서 강토를 지킨 민들레
왁자지껄 까불대던 철새들 떠난 뒤
조국강산의 가장 비루한 자리에서
핍박 받는 노동자처럼 궐기하며
가난한 이들의 틈에서 생을 지켜왔다
보라, 꽃 피우고 씨방 차려
창공을 박차고 나갈 때
저들의 배후가 무엇이었는가를
허공에 나부끼는 티끌이건만
다시 이 땅에 생명을 점지하러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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