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슬한 탄금(彈琴) /이만섭
바람의 연주를 듣는 저녁
꽃등 같은 붉은 열매를 매단 마가목 활엽들이
수런수런 배경으로 서 있네
이파리마다 고스라져
어디서 현을 키는지 물을 수 없네
한때, 물오른 버들가지 희롱하고
하얀 배꽃 분분히 날리던 사연들은 다 잊었는데
쫓고 쫓기는 분주한 몸짓에서
훤히 드러나는 방랑 벽은
갈색 숨결로 묻어오는 마른 향기조차도
거칠게 다가올 때는
수수밭을 쓸고 둔덕의 억새꽃마저 흔드네
그리하여 어디에도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허공으로 허공으로 내 마음을 이끄네
처음 들려주던 낮은 목소리는
G선의 음계처럼 지평에서 일었어도
아무도 듣는 이 없이 외로울 때는
야성의 아우성으로 벌판을 허허로이 난무했네
이제 서걱서걱 계절의 쓸쓸함을 노래하며
흩어지는 저 탄금 소리가
마침내 저녁길의 이정비처럼 나를 세우네
나뭇잎 하나에도 손수 현을 키는
저 악기 소리 소슬하네

Lonelines28s, Fariborz Lach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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